(2) 공룡능선

2010. 8. 13. 18:02나를 찾아 걷는 길/설악산 산행

설악산 산행 (2)

 

2010.8.10. 화요일 맑고 흐리고 비 옴

 

중청대피소 침상에 누워 잠이 들었다 깨어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30분이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다 3시 15분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 일기를 점검해 본다.

바람은 잠잠하고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게 빛나고 있다.

구름은 여기저기 조금씩 떠 있다.

 

소리 나지 않게 배낭을 꾸려 문을 나선다.

더없이 좋은 날씨다.

예정대로 희운각을 거쳐 공룡능선을 타고 넘어 비선대로 하산하기로 결정하고,

랜턴을 켜고 어두운 길을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떼어 놓는다.

시간은 새벽 4시 10분을 가리키고 있다.

일출시간은 새벽 5시 35분이라고 한다.

 

속초시내의 야경 불빛이 아름답다.

 

 

 

희미하게 날이 밝아오는 빛, 또는 그 무렵을 여명(黎明)이라고 한다.

나는 여명에 걷기를 좋아한다.

 

여명은 태동하는 빛이다.

희망의 빛이고, 찬란함을 잉태한 빛이다.

 

 

 

 

 

대청봉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올라오는 사람과 엇갈리며 소청봉을 향하여 내려가고 있다.

지향하는 바와 추구하는 바가 서로서로 다름이 존재하기에 인류는 공존할 수 있는 것 같다.

 

1시간여를 걸어 내려가니 일출이 시작되고 있다.

잠시  화채봉 뒤로 떠오르는 일출 광경에 빠져 본다.

 

 

눈을 돌려 공룡능선과 울산바위 쪽을 바라보니,

아침 붉은 태양빛을 받아 설악이 신비롭게 보인다.

 

 

 

범봉과 울산바위가 아침 햇살을 받고 서 있다.

 

 

 

 

동녘 아침 햇살을 받은 1275봉, 범봉의 자태가 아름답다.

 

 

 

울산바위 오른쪽으로 달마봉이 보이고, 범봉이 아름답게 빛난다. 

장엄한 광경에 매료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망연히 서 있는다.

희운각에 도착하니 6시 10분이다.

오늘의 힘든 등반을 감안하여 라면을 끓이고 햇반도 사서 푸짐히 먹는다.

2리터 페트병 생수를 사서 수통에 채우고 작은 페트병에도 채우고 남는 물은 마신다.

나를 찾아 길을 떠나야겠다.

 

아침 7시

공룡능선에 오르기 위해 산길을 걷기 시작한다.

공룡릉선(恐龍陵線)은 보통  마등령에서부터 희운각대피소 앞 무너미고개까지의 능선구간을 가리킨다

공룡의 기괴한 등뼈를 연상시키 듯 험봉이 솟아 이어져 있는 설악산 최대의 암릉이다.

설악산의 척추 격인 공룡능선은 기묘한 암봉들이 용트림하듯 화강암 봉우리들로 내설악과 외설악의 경계를 이루고 있어,

내외 설악을 모두 두루 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라 할 수 있다.

 

철주와 쇠줄을 붙잡고 오른다.

가파른 길을 오르고 또 오른다.

한 봉우리를 도니 나무와 숲이 우거져 있다.

진한 산냄새가 난다.

산냄새가 그리워 산을 찾아 헤매던 지난날이 그리워진다.

불현듯 나 자신이 공룡능선에 서 있는 한그루 나무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나무와 숲과 암봉이 친구처럼 다정히 다가온다.

들꽃들도 다정히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모싯대도 보이고, 벌개미취도 보인다.

하얀 바람꽃이 반겨준다.

깊고 높은 산길을 걸으니 머리가 쇄락해진다.

 

해골바위가 있는 암봉에 도착한다.

여기가 공룡능선 최고의 전망대라 할 수 있다.

 

 

 

양각봉(1275봉), 범봉, 천화대가 보이고,

양각봉(1275봉) 뒤로 마등령, 그 오른쪽으로 진대봉(세존봉),  마등령 뒤로 황철봉이 보인다.

 

 

 

 

서쪽 용아장성능이 공룡능선을 뒤 따르고 있다.

 

 

 

저 멀리 울산바위가 보인다. 달마봉도 보인다.

 

 

 

범봉을 배경으로 바람꽃을 찍는다.

 

 

 

 

바람꽃과 눈인사를 나누며 또 산길을 걷는다.

 

보라색 솔체꽃이 보인다.

다가가 몸을 낮추어 이야기를 걸어 본다.

솔체꽃에는 벌이 열심히 꿀을 빨고 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라 하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라 하네"

 

물처럼 바람처럼 살기가 그리 쉬운가.

해탈을 이루어야 가능한 일

그러나 부단히 연습해 보자.

마음을 깃털처럼 가벼웁게 해보자.

 

저 높은 깊은 숲 속에 숨어서 피는 들꽃에게서 이야기를 들어보자.

벌과 꽃들에게 들어보자.

 

1275봉을 오른다.

암반에 철주를 박아 쇠줄을 쳐 놓은 가파른 암벽길을 오른다.

산솜다리는 어디에 갔는지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

벼랑 끝에 솔체꽃 세 송이가 바람이 흔들거리고 있다.

근접하여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철주에 걸려 있는 쇠줄을 넘는다.

비탈진 암벽으로 걸어 나가려 하니 갑자기 누가 뒤에서 몸을 당긴다.

뒤돌아 보니 배낭끈이 쇠줄에 걸려 당기고 있는 것이다.

위험하니 가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멀리서 바람에 너울 거리는 솔체꽃 세 송이를 무연히 바라본 뒤 1275봉을 향하여 걸어 오른다.

 

 

뒤 돌아보니,  철주를 박고 쇠줄을 쳐 놓은 가파른 암벽길과  1275봉 기둥바위 뒤로 천화대 첨봉들이 바라보인다.

 

1275봉(양각봉)은 거리상으론 공룡능선 중간지점에 해당된다.

그렇지만 심적으론, 힘든 곳을 주파해서 그런지 공룡능선을 다 주파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산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이렇게 올라왔으니 또 내려가야만 한다.

인생 또한 그렇지 아니한가.

달은 찼다가 기울고, 꽃은 피었다 지는 법

 

달은 기울어도 가을은 다시 오고

꽃은 져도 봄은 다시 온다.

성주괴공 영고성쇠

대자연의 진리다.

 

긴 내리막 돌길을 조심조심 걸어 내려간다.

하얀 바람꽃이 청초한 모습을 뽐내고 있다.

험준하고 날카로운 봉우리를 바라보며 예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나이가 지긋한 산님이 걸어 올라오고 있다.

날씨가 변덕을 부린다며, 말을 걸어온다.

바람꽃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더니, "혹시 이 꽃 이름을 아십니까?"라고 묻는다.

"바람꽃이에요."

"정확하게 다시 한번 말씀해 주세요."

"바 -  람-   꽃 "

산님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앞서가던 일행을 따라가며  "이 꽃이 바람꽃이야" 한다.

 

비가 뿌리가 시작한다.

등대시호가 보인다.

 

 

 

모싯대가 보인다.

비가 오고 있지만, 저 모싯대는 카메라에 담아야 할 것만 같았다.

 

 

 

빗줄기는 제법 굵게 거침없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젊은 부부가 비에 흠뻑 졌어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걸어오고 있다.

"안녕하세요" 씩씩하게 인사한다.

"우의를 가져오시지 않은 모양이에요. 어찌하면 좋지요?"

"우의는 가져왔어요.  땀에 젖으나 비에 젖으나 같을 것 같아서 우의를 입지 않았어요." 한다.

그러나 물에 빠진 형국이라 남이 보기에 안쓰럽다.

미끄러운 길 조심하며 안전산행 하자며 서로 격려하며 헤어진다.

 

우중에 운무가 피어오르고 있다.

 

 

 

 

 

마등령 갈림길에 도착하니 비가 더욱 세차기 내린다.

비선대로 가기 위해 마등령 가파른 산길을 오른다.

  

공룡능선이 환히 조망되는 전망대에도 비는 어김없이 오고 있다.

수묵화로 그린 공룡능선이 하늘에 걸려 있다.

천화대, 범봉, 양각봉(1275봉)....

 

 

 

우의를 입은 관계로 땀이 비 오듯 한다.

카메라에도 물이 스며든 것 같다.

온몸은 비인지 땀인지, 비와 땀이 범벅이다.

등산화 바닥은 질퍽하다.

다리는 지치고, 배는 고프고

터벅터벅 걷다 보니 비가 그친다.

바위가 있는 전망 좋은 곳에 앉아 재빨리 식사를 한다.

 

 

 

 

 

한 참을 걸어내려가니, 마치 거대한 비석같이 생긴 붉은색이 도는 비쭉한 암석이 보인다.

그 옆에는 적송 두 그루가 서 있다.

 

 

 

이제 금강굴이 있는 장군봉을 돌아 내려간다.

끝없이 이어지는 층층의 돌 길

왜 그리도 멀게만 느껴지는지.

 

시간은 오후 4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지금까지 장장 12시간 20분을 산길에서 보냈다.

앞으로도 1시간은 더 가야 시내버스 정류장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력!

천천히 쉬임 없이 발길을 떼어 놓으니, 어느 사이 시내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있다.

 

비에 젖고, 땀에 젖은 하루이다.

공룡의 등뼈 같은 험준한 봉우리 공룡능의 산냄새에 흠뻑 젖은 하루였다.

미소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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