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항에서

2010. 4. 26. 11:47시 모음/시

  

모항에서

 

모항에서

김 혜 선

 

그대 등 뒤에서 노을을 보았네

낮출수록 잘 보이는 것이 인생이라며

낮게 낮게 가라앉았네.

 

번지는 노을을 보며 나는 들었네

들녘의 곡식 기우는 소리

내 빈속의 바람소리

 

이루지 못한 꿈 하나씩 살라 먹으며

앉은뱅이꽃으로 주저앉은 내가 세월의 그늘 밑에서

뿌려지는 햇살 한 줌 이고 사는 동안

닫아건 마음은 점점 어두워지고

 

자기 몸을 낮추고 있는 그대 등 뒤에서 나는 보았네

두근거리는 꽃이 되는 날 있을 거라며

그대에게 노을꽃을 만들어 주는 어둠

 

그대 등 뒤에서 노을을 보았네

숙일수록 잘 보이는 것이 인생이라며

깊이 좀더 깊이 고개 숙이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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