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귀나무 열매
재가 되어서 이 향 아(1938- )우리는 비로소 만났다 재가 된 후에야 억센 가시덩굴과 흙뿌리와 묵은 둥치 쪼그라든 열매와 버스럭대는 잎사귀들 그들과도 까맣게 이별한 후에 우리는 이제야 재가 되어서 만났다 뜨겁던 날들은 그만큼 외롭더니 타버리면 그뿐, 벼랑인 줄 알았더니 저 구천 벼랑의 갈맷빛 물결 죽지 펴 꽃잎처럼 춤추는 허공 결코 붉거나 푸를 수는 없는 그렇다고 검거나 희지도 않은 '후' 불면 날아갈 하찮은 무게로 이렇게 겸허한 재가 되어 돌아왔다 기다리던 걸음걸음 밭고랑에 쏟아 억울하지 않게 스며드는 길 다시 무슨 섭섭함을 말하려는가 이제야 어리석음을 탓하려는가 돌아다보는 길목 그리움마다 천천히 돌아와서 사각거리는 바람.
2019.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