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의 한강 소묘(素描)
가을 소묘 김 동 현 가을, 삽상(颯爽)한 바람. 하늘은 그대로 강으로 더불어 정사하여 푸른 피를 마구 흘려놓는데 이 땅의 어딘들 시심(詩心)을 돋우지 않는 곳이 있으랴 허옇게 팬 갈대꽃이 바람품으로만 헤집어 드는 것은 누구를 향한 한없는 그리움과 사념의 몸짓인데, 푸른 산빛은 한 귀퉁이씩 그 빛을 바래만 가고……. 길섶엔 점점이 모자이크해 박은 코스모스 신파의 프리마 돈나처럼 수줍게 흰빛, 자짓빛, 선홍으로 꾸며 바람을 안고 가볍게 궁글어, 머슴애 뛰는 가슴을 마구 헤집어 놓고……. 바람이 인다. 갈잎은 굴러 사내의 긴 그림자를 앞서서 끈다. 바람통에 제 영혼을, 온통 하늘이 하얗도록 날리고는 억새는 눈부신 죽음으로 찬란히 눕다.
2023.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