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피카소의 물감 통
가을, 피카소의 물감 통 우당 김 지 향 피카소가 하늘 이마에 왕방울 황소 눈을 매달았다 풀잎들이 손끝으로 황소 눈알이 머금고 있는 물감을 톡, 퉁긴다 뼈 채로 서 있는 나뭇가지에 왕방울 홍시가 열린다 하늘 이마 군데군데 얼룩처럼 빨간 칠을 한 홍시가 가을바람을 굴린다 나무들이 내는 뭉툭한 타악기 소리 가을을 밟고 가는 이들의 가슴에 자고 있던 추억의 씨가 목을 빼고 내다본다 하늘 가슴도 포물선처럼 숨차게 나부낀다 사방천지 피카소의 왕방울 눈이 댕그랑 댕그랑 황소 목에 걸린 방울 소리를 내며 가을이 깊어간다 깊어가는 가을밤엔 맘껏 퍼내지 못한 채 단풍드는 사람들의 가슴에도 해명이 안 되는 피카소의 황소눈알을 떠 와서 보글보글 클래식과 재즈를 뒤섞어 끓인다
2010.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