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12. 09:57ㆍ카테고리 없음
울릉도 성인봉(聖人峰)
우리나라 동해의 끄트머리에는 두 개의 섬이 있는데 울릉도와 독도이다. 성인봉을 중심으로 한 화산섬인 울릉도는 신생대 제3기 말인 플라이오세(Pliocene)에서 제4기 홀로세(Holocene)까지의 화산 활동으로 형성되었다. 울릉도는 수심 2,200m의 해저로부터 솟아오른 것이므로, 최고봉인 성인봉의 높이를 더하면 그 고도는 3,000m를 넘는 대형 화산이 된다. 경사가 완만한 순상 화산체를 이루고 있는 해저는 신생대 제3기 중기인 약 2,500만 년 전에 형성되었으며, 현재와 같은 육상의 울릉도 골격은 약 270만~1만 년 전에 수차례의 화산 분출을 통해 형성되었다.
육상은 해저와는 달리 경사가 급한 종상 화산체를 이루고 있다. 이후 약 1만 년에서 6,300년 전 사이에도 7회 이상의 크고 작은 화산 활동이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성인봉 일대가 크게 무너져 내리면서 칼데라 지형인 나리 분지, 알봉 분지, 알봉이 형성되었다. 울릉도 종상 화산체의 지질은 기본적으로 조면암, 응회암 등의 알칼리 화산암류이다. 섬 중앙의 성인봉 일대는 주로 응회암과 조면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송곳봉, 가두봉, 초봉 등 성인봉 주변에 급경사의 암봉을 이루는 지역은 조면암과 포놀라이트로 이루어진, 점성이 높은 용암이 분출한 곳이다. 성인봉 일대는 응회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돌출된 암봉을 잘 형성하는 주변의 조면암 산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사가 완만하고 지표에는 풍화층과 토양층이 더 두껍게 발달해 있다.
성인봉에서 능선과 골짜기는 3개 방향으로 뻗어나가는데, Y자 모양으로 발달한 능선의 북쪽 골짜기에는 약 1만~6천 년 전 화산체 정상부의 함몰로 형성된 칼데라(caldera) 지형이 바닥 면적 약 2㎢의 크고 깊은 분지를 이루며 발달하고 있다. 2단으로 이루어진 칼데라 분지 바닥의 상단은 해발고도 440m 내외의 알봉 분지이며, 하단은 나리 분지로서 해발고도는 350m 내외로 나타난다. 나리 분지는 울릉도에서 가장 넓은 평지를 이루고 있다. 칼데라 분지 내에는 알봉(538m)이 위치하고 있는데, 알봉은 칼데라 형성 이후의 화산 분출로 인해 만들어진 중앙화구구(中央火口丘)로서 이중(二重) 화산체 지형이다. 성인봉을 중심으로 하여 북쪽으로 펼쳐진 능선은 칼데라를 둘러싼 내측으로 경사가 급한 산지인 외륜산(外輪山, somma)을 이루고 있다.
울릉도의 최고봉인 성인봉은 울릉도 모든 소하천의 발원지로서, 성인봉 주변의 사면에서 발원한 소하천은 온 사방으로 흘러내려 동해에 유입된다. 또한 성인봉 일대는 인간의 간섭을 받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원시림을 이루며, 섬피나무, 너도밤나무, 섬고로쇠나무 등 희귀 수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서, 성인봉 원시림은 1967년에 천연기념물 제189호로 지정되었다.
□성인봉 등반
울릉도 중앙부의 성인봉(聖人峰)은, 산의 모양새가 성스럽게 생겼다 하여 성인봉이라 불렀다 한다.
또, 아주 오랜 옛날 나물을 뜯던 한 소녀가 신령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하여 유래한 이름이라고도 한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성인봉은 연평균 300일 이상 안개에 싸여 있어 그 신비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울릉도 4륜구동 택시를 타고 KBS 중계소를 지나 민가가 있는 삼거리 산행 들머리에서 하차한다.
좁은 산길 둔덕에는 애기범부채 꽃대가 바람이 흔들리고 있다.
둔덕 너머 산기슭 경사진 산채밭에는 경작용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있다.
울릉도의 밭들은 대개가 경사가 25도 이상이 되어 모노레일에 의지해 농사를 짓고 있다.
산행을 하다 뒤돌아 보니 도동항을 감싸고 있는 행남봉과 망향봉이 내려다 보인다.
지그재그 산길을 걸어 동백나무 군락지를 지나 능선 위에 올라선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아치형 다리가 있는 사다라꼴에 도착하니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나무숲은 단풍이 물들어 가기 시작한다.
빼욱하게 도열한 너도밤나무 아래에는 양치식물 고사리가 초록 융단처럼 깔려 있다.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기 시작할 무렵 팔각정에 도착한다.
팔각정에 올라 우의를 벗고 배낭을 풀고 비를 피한다.
저동항이 짙은 안갯속에 파묻혀 희미하게 보인다.
팔각정 안은 내리는 비를 피하는 등산객들로 가득 차 있다.
계속 머물 수 없어 비를 맞으며 산을 오른다. 안평전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바람등대에 도착한다.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는 골을 타고 쉼 없이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등대는 등대가 있는 곳이 아니라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능성이'라는 뜻이라 한다.
단풍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곳이다.
가늘어졌다 굵어졌다 하는 비를 맞으며 성인봉 정상에 도착하니 하얀 안개에 뒤덮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잡목과 마가목 섬조릿대로 둘러싸인 성인봉 정상
울퉁불퉁한 바위 더미 위에 "聖人峰" 각자가 있는 뾰족한 표지석이 짙은 안갯속에 비를 맞으며 서 있다.
비에 젖은 무성한 섬조릿대 길을 헤치며 정상에서 북쪽으로 20m 떨어진 전망대로 향한다.
섬조릿대와 마가목이 울타리처럼 둘러싸고 있다.
하얀 안갯속에 깃꼴겹잎을 펼치고 있는 마가목이 신비롭게 보인다.
붉게 단풍이 든 잎이 인상적이다.
가는 비는 여전히 내린다.
전망대에 서서 하얀 안개로 뒤덮인 허공을 망연히 바라본다.
" 여화분고초 멸진무유여(如火焚枯草 滅盡無有餘)..." 하고 천수경의 한 구절을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안개여! 마른풀을 불태우듯 흔적조차 없어지이다." 염원해 본다.
우비에 빗물이 스며들고, 강한 바람으로 인하여 오슬오슬 추위가 느껴진다.
수통에 담아 온 뜨거운 물을 마시며 추위를 달랜다.
염원이 깊으면 이루어진다 하였던가
문득 앞을 바라보니 강한 바람이 안개를 몰아가는 순간 송곳산이 찰나적으로 얼굴을 내민다.
아! 송곳산! 탄성이 절로 난다.
또, 파노라마 사진처럼 외륜산 능선을 언뜻언뜻 보여주곤 순식간에 다시 안갯속에 파묻힌다.
이렇게 하기를 서너 차례 반복한 후 안개 장막은 더 이상 시야를 열어주지 않는다.
침묵하는 안개, 더 이상 꿈쩍도 않는다.
구름 속에 내가 떠 있다
김 길 남
구름 속에 내가 떠 있다
칼날처럼 깎인 성인봉 능선 상에
바람 소리 벗 삼아
살아가는 나무들은
모두가 낯 설은 표적뿐인데
우유 빛 구름들은
사뿐 가쁜 춤을 추고
멀리 하늘과 맞닿은 바다는
무슨 빛을 발하는지
분간 키 어렵구나
뽀얀 구름
아니 안개인지도 몰라
그들은 내 시야를 가리고
바람은 내 눈에 표적을 남기면서
젊음의 생동처럼 바빠도 달아나고
꿈 결 그려보던 울릉도는
오직 구름과 바람과
하늘과 맞닿은 바다 빛은
정녕 푸른 건가 하얀 건가
심수아 삼숭 하여라
<사진 촬영 : 2012.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