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의 산내암자 관음암(觀音庵)

2025. 2. 3. 19:09사진/사찰

법주사의 산내암자 관음암(觀音庵)

 

□경업대(慶業臺)

신선대 삼거리에서 관음암으로 가는 길은 가파른 내리막 길이다. 쇠줄을 잡고 암벽길을 내려서니 덩치 큰 바위들이 솟아 있다. 내려온 길을 올려다보니 하얀 암벽이 푸른 하늘에 닿아 있다.

 

경업대는 조선 인조(1594∼1646) 때, 임경업(林慶業) 장군이 독보대사(獨步大師)를 모시고 심신을 단련한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그의 이름을 따서 경업대 (慶業臺)라 불리게 되었다.

해발 1,016m 산정에 있는 입석대는 장군이 7년 수도 끝에 누워 있던 바위를 세운 것이라 전해진다.

또 다른 전설은, 신라 진평왕 30년에 왕비인 마야부인(摩耶夫人)이 왕녀 덕만(德蔓)과 왕자 법승(法昇)을 데리고 와서 피난할 때 세워 놓고 매일 아침 입석대에서 부왕(父王)이 계신 서라벌을 향하여 예배하였다고 한다.

 

경업대에 올라  앞을 바라보니 입석대를 중심으로 기암괴석이 즐비하게 서 있고, 신선대도 바라다보인다.

돌들이 빚어낸 속리산의 빼어난 경승(景勝)이다.

 

경업대(慶業臺)
경업대 슬랩(slap)
입석대(立石臺) - 열린 돌 위에 비석처럼 우뚝 선 돌로 임경업 장군이 7년 수도 끝에 세운 것이라 전해오고 있다.
입석대
좌측 암봉이 신선대(神仙臺) - 백학(白鶴)이 날고 백발이 성성한 신선들이 담소를 나누던 봉우리라하여 신선대(神仙臺)라 불리어 진다

 

 

속리산(俗離山)은 세속을 여윈(俗離) 산이다.

12세의 나이로 당에 유학한 신라 말기의 학자, 문장가, 문신인 최치원(崔致遠, 857년~908년 이후?)이 원강왕 12년(886) 법주사와 속리산 암자를 둘러보고, "道不遠人 人遠道, 山非俗離 俗離山" 즉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으나 사람이 도를 멀리하고, 산은 세속을 여의지 않으나 세속이 산을 여읜다"라고 읊었다.

 

□법주사의 산내암자 관음암(觀音庵)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산내 암자이다. 속리산의 정중앙에 위치하며,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도량이라고 하여 관음암이라 하였다. 663년(문무왕 3)에 회월(晦月)이 창건하였는데, 회월은 60세에 이 암자를 창건하여 168세에 입적하였다고 하며, 장수의 비결로 아침에는 새벽공기를 마시고 낮에는 솔잎을 먹으며 저녁에는 관음암의 장군수(將軍水)를 마신 때문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부근일대에 많은 기왓 조각이 널려 있는 것으로 보아, 창건 이후 수차례의 중수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나 연대 등의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근래에 들어서 무속인들의 기도처가 되었다가 1955년 무렵 선암(仙巖)이 법당을 짓고 중창하였으며, 1971년 법당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다시 가파를 계단을 내려서서 걷다 보니 관음암 0.2km 이정표가 서 있다
연등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니  거대한 바위가 갈라져 있는데  바위에  "觀世音菩薩' 각자가 있고, 그 위로 삼층석탑이 보인다.
속리산 8 석문 중의 하나인 금강석문(金鋼石門)이다.

"洗(세) 心(심) 門(문) 

세속의 잡다한 번뇌와 망상을 버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오십시오.

스님이 수행 정진 중입니다"라는 안내 팻말이 서 있다.

7년 수도후 하산하겠다는 임경업 장군에게 스승인 독보대사가 큰 바위를 갈라 문을 내고,  "앞으로 너는 이곳에 3년 더 머물며 수련하고, 이 문을 드나들며 마음을 씻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는 세심문(洗心門)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갈라진 바위 사이를 걸으며 마음을 씻는다.
조선의 명장 임경업 장군이 스승인 독보대사와 같이 7년간 수도하였던 곳이라 하여 경업대토굴(慶業臺土窟)이라 부르는 자연동굴에는 바위틈에서 용의 양쪽 눈에 해당한다 하여 용안수(龍眼水)라고도 부르는 이 샘물은 임경업 장군이 마시던 물이라 하여 장군수(將軍水)라 부른다. 똑똑똑 ...  바위에 맺힌 물방울이 샘물 위로 쉼 없이 떨어지며 적막한 굴속을 울리고 있다.

바위옆 돌계단을 밟고 올라서니 전망이 환히 트이는 곳에 관음암을 중창한 선암선사(仙巖禪師)의 승탑이 서 있다.
7층석탑을 올려다보며 돌계단을 오르니 깎아지른 바위 아래 관음암 법당이 서 있다.
법당에는 관음암, 경업대 편액이 걸려 있다.
'慶業臺' 편액은 충민공 임경업(忠愍公 林慶業)의 12대손이 썼다.
또 법당 위 암벽에도 '慶業臺'라 새겨져 있다.

스님은 보이지 않고 고요한 적막만 흐르고 있다.
절 마당에 서서  망망하게 굽이치는 겹겹의 산능선을 바라본다.

 

"洗(세) 心(심) 門(문) - 세속의 잡다한 번뇌와 망상을 버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오십시오. 스님이 수행 정진 중입니다" 라는 안내 팻말이 서 있다.
금강석문(金鋼石門) - 바위에 '觀世音菩薩' 각자가 있다. - 세심문이라 불리기도 한다
장군수 - 경업대토굴(慶業臺土窟)이라 부르는 자연동굴에는 바위틈에서 용의 양쪽 눈에 해당한다 하여 용안수(龍眼水)라고도 부르는 이 샘물은 임경업 장군이 마시던 물이라 하여 장군수(將軍水)라 부른다.
관음암 오르는 돌계단
선암선사 승탑
관음암 칠층석탑과 우측 아래로 선암선사 승탑이 보인다.
관음암(觀音庵)
암벽에 있는 慶業臺(경업대) 각자
법당안에 걸려 있는 충민공 임경업의 12대 손이 쓴 '慶業臺' 편액
관음암 슬레이트 지붕너머로 보이는 겹겹의 산 능선
관음암에서의 조망(1) - 망망하게 굽이치는 겹겹의 산능선
관음암에서의 조망 (2) - 망망하게 굽이치는 겹겹의 산능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