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이 ~데야… 어라이 ~데야….”
멸치 후리는 소리에 장단을 맞춰 선원 예닐곱명이 그물을 턴다.
멸치가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튀어오르는 은빛 멸치들이 눈부시다.
온힘을 다해 그물을 털어낼 때마다 그물코에 박혀 있던 멸치들이 하늘로 뛰어오르며 어지러이 춤을 춘다.
살점이 이리 튀고 머리가 저리 튄다. 어느덧 깔아놓은 그물 위에는 멸치가 수북이 쌓인다.
어쩌다 밖으로 멀리 떨어지는 멸치는 줍는 사람이 임자.
주변에는 이 광경을 보려고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멸치가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사람들이 환호한다. 하나, 둘 날아드는 갈매기도 가로등 위에 앉아 입맛을 다시며 기회를 엿본다.
팔딱팔딱 살아 움직이는 싱싱한 느낌이 그대로 전해진다.
나른한 봄날, 활력이 넘치는 항구를 찾아나선 길이었다.
부산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 대변항. 처음 듣는 사람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큰 해변이라는 뜻이다. 대변항의 주인공은 단연 멸치. 멸치가 물이 오르는 봄이 되면 이곳은 봄멸치 잡이로 바빠진다.
아침이면 뱃고동을 울리며 떠난 배들이 저녁이면
멸치를 가득 싣고 돌아와서 멸치를 털어내느라 항구가 온통 들썩거린다.
대변항에서 잡히는 멸치는 어른 손가락만한 왕멸치로 전국 유자망 멸치 어획량의 70%를 차지한다.
“마, 멸치를 털다 보면 아무 생각이 없어집니데이.”
멸치 내장과 살점이 마구 튀어 한마디로 멸치 범벅이 된 젊은 선원이 고단한 얼굴로 담배를 피워 문다.
멸치 잡는 것보다 멸치 터는 일이 더 힘들다고 한다.
이렇게 서너시간 온힘을 다해 멸치를 털고 나면 몸이 녹아난다.
“먹고 살라믄 별수 있겠어예. 마, 멸치가 밥줄인데….”
요즘은 눈만 떴다 하면 온통 멸치밖에 안 보인다며 빙긋 웃는다. 웃는 모습이 싱그럽다.
물 한모금과 막걸리 한사발 그리고 담배 한대로 짧은 휴식을 끝낸 그는 다시 일행과 함께 멸치를 턴다.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면서 가로등 불빛이 바다 위에서 출렁인다.
울긋불긋한 횟집 간판이 바다 위로 영롱한 불빛을 길게 드리운다.
“아재들! 어데 가능교? 싱싱한 며루치회 묵을라모 퍼뜩 이리로 오이소.”
횟감이나 말린 미역을 파는 아지매들도 목소리에 생기가 돋는다. 늦게 귀항한 배에서는 아직도 불을 환히
밝히고 멸치를 털고 있다. 가쁜 숨을 내쉬며 멸치 후리는 소리가 밤바다로 아득하게 울려퍼진다.
항구에는 언제나 왁자지껄한 삶의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날것들이 팔딱거리고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그곳에 있으면 누구든지 힘이 솟을 것만 같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 기차에서 주변 사람들이 자꾸 나를 쳐다보며 저만큼 피해 앉는다.
처음에는 왜 그런지 이유를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나도 온통 멸치 비린내에 젖어 있었다.
사람들에게 이유 있는 미소를 보낸다. 나는 이 비린내에서 내가 ‘살아있음’을 흠뻑 느끼고 왔노라고…. 사진·글 = 김선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