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과 어용샘

2011. 8. 15. 15:54문화유적 답사기/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과 어용샘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과 어용샘

 

선법사 가는 길은 객산에서 흘러내리는 작은 계류를 따라 좁은 길을 한참을 가야 한다.

장마와 폭우로 계류 옆 좁은 길은 많은 상처를 입었다.

'선법사'라  쓴 돌표지석을 지나 경사진 길을 걸어 올라가니  목탁소리가 들려온다.

극락전에 오르는 입구 계단을 지나 산기슭을 따라 돌아 오른다.

 

눈을 들어 앞을 보니  갑자기 울창한 수림 속  심산유곡에 들어온 것 같다.

작지만 수려한 곳

나무줄기에도 바위에도 푸른 이끼가 끼었다.

바위 절벽 위에서 작은 폭포가  떨어지고 있는데 '객산폭포'라 부른다.

폭포 옆으로 두 개의 삐죽한 형상의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데 그 바위 윗면에 ' 마애약사여래좌상'이 있다.

폭포 아래 보호각안에는 바위틈으로 물이 끊임없이 흘러 내려서 움퍽 파인 바위에 고였다가 물이 흘러넘친다.

백제 온조왕이 마셨다 하여 '어용샘'으로 부르는 약수다.

 

"이곳은 백제시대의 사찰이 있었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그러나 지금은 선법사의 모든 것이 세월에 묻히고 역사는 흩어져 버려 온전한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곳에 있는 작은 약수를 백제 온조왕이 마셨다하여 어용샘으로 부르고 있다는 점이 역사를 잃은 선법사로서는 작은 위안이다."

 

나무아래 쉼터 긴 의자에 조용히 앉아 극락전에서 들려오는 목탁소리와 염불소리를 듣는다.

극락전 주련을 읽어 본다.

 

無量光中化佛多    한량없는 광명 속에 수많은 화신불이신데

仰瞻皆是阿彌陀    우러러 뵈 오면 모두가 아미타부처님이시네.

應身各挺黃金相    응신에는 제각기 황금상 빼어나고

寶髮都旋碧玉螺    보배상투는 모두가 푸른 소라로 덮여 있네.

 

극락전 외벽에는 십우도가 그려져 있고,

극락전 뒤  산기슭에는 상사화가 비에 젖어 피어있다.

 

 

 

 

 

마애약사여래좌상. 객산폭포 그리고 어용샘

 

 

 

마애약사여래좌상과 객산폭포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있고 옷은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고,  다섯 잎의 활짝 핀 연꽃이 불신을 떠받치고 있고, 손바닥을 위로 한 왼손에는 약그릇이 놓여 있으며, 오른손은 손바닥이 정면을 향하고 손가락을 위로하고 있는 磨崖藥師如來坐像

 

 

                       

 

“太平二年丁丑七月二十九日古石佛在如賜乙重修爲今上皇帝萬歲願”이라는 글씨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河南 校山洞 磨崖藥師如來坐像)

보물  제981호

 

이 마애불은 교산동 선법사 옆에 있다. 마애불에 대해 조선시대 이전으로 올라가는 기록은 찾기 어려우나, 1937년 발간된 [경기지방의 명승사적]에는 객산 계곡 옆에 이 마애불이 있다고 쓰여 있다. 계곡에는 조그만 폭포가 있는데, 1960년 무렵까지 이곳 사람들은 이 폭포를 ‘객산폭포’라고 불렀으며, 동네 이름은 ‘약사골’이라 불렀다. 지금은 폭포수 좌편에 선법사라는 절이 들어서 있지만, 당시 이 자리에는 농가(農家)가 한 채 있었고, 이 농가터와 폭포수 위쪽이 절터로 추정된다. 이 마애불은 경기도유형문화재 제59호 ‘광주교산리마애약사여래좌상’으로 불리다가 1989년 4월 보물 제981호로 지정되면서 ‘태평이년명마애약사불좌상(太平二年銘磨崖藥師佛坐像)’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름을 풀어보면 태평 2년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앉아있는 모습의 바위에 새긴 약사불이라는 의미이다. 2010년 7월 다시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으로 개명하였다. 높이가 93㎝이고 광배와 대좌를 갖추고 있다. 보물 제982호로 지정된 ‘이천 장암리 마애보살반가상’보다 조각술이 훨씬 정교하고 아름답다.

왼손에는 약그릇을 들고 있으며 코는 거의 떨어져 나가고 없다. 불상의 왼편에는 “태평이년정축칠월이십구일고석불재여사를 중수위금상황제만 세원(太平二年丁丑七月二十九日古石佛在如賜乙重修爲今上皇帝萬歲願)”이라는 글씨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이것을 번역하면 ‘태평 2년 정축 7월 29일에 옛 석불이 있던 것을 중수하오니 지금 황제의 만세를 기원합니다’라는 말이 된다. 태평 2년은 고려 경종 2년(977)이므로 그 이전에 있던 석불을 이때 다시 중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남역사박물관)

 

 

 

 

 

 

보호각 속에 있는 백제 온조왕이  마셨다 하여  '어용샘'으로 불리는 약수

 

  

선법사 요사채와 극락전

 

   

 

선법사 극락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