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남산 와룡매

2011. 4. 17. 14:35나를 찾아 걷는 길/探梅 -매화를 찾다

남산 와룡매

 

일본 미야기현 마쓰시마 즈이간지(瑞巖寺)의 본당 앞에는 홍매화 한 그루와 백매화 한 그루가 용처럼 누워있는데, 자라는 모습이 마치 용이 엎드려 있는 것과 같다고 해서 와룡매라고도 한다.  즈이간지(서암사)의 명물이자 현이 지정한 천연기념물로 사랑받고 있다. 이 나무는 원래 우리 땅에서 자랐던 매화이다. 창덕궁 선정전 앞에 있던 것을 임진왜란 중인 1593년 마쓰시마 영주였던 다테 마사무네가 무단으로 뽑아간 와룡매 다섯 그루 중 두 그루(홍. 백매)를 서암사에 심은 것이다. 서암사는 안중근의사가 처형되기 직전 감옥에서 친하게 지냈던 일본인 교도관의 위패가 안치된 절이며 해마다. 이곳 주민들이 모여 안의사의 추도법회를 여는 절이다. 1999년 3월 10일 당시 서암사의 주지였던 히라노 소조가 한국 침략을 참회하는 의미로, 와룡매 홍. 백매를 접목한 묘목 각 한 그루씩을 안중근의사 기념관에 기증함으로써 와룡매는 400여 년 만에 환국하게 되었다. 기념관 앞 분수대 옆으로 나란히 심어진 와룡 홍.백매 두 그루는, 우리 곁으로 돌아와 우리 땅에서 건강하게 자라 다시금 향기로운 꽃을 피우고 있다. 

('우리 매화의 모든 것' 에서 참조)

  

(1) 와룡홍매

     수령 15여 년생이고, 꽃잎이 16-22매이고, 꽃술은 암술이 1-2개, 수술이 31-45개인 홍매다.   

 

 

한국 最古의 매화기록은 일연이 쓴 삼국유사 흥법편 제3항에 나오는 阿道基羅條 끝 부분에 붙여 찬한 매화시다.

불교 흥법의 전조를 은유한 내용이다.

 

雪擁金橋凍不開

鷄林春色未全廻

加怜靑帝多才思

先著毛郞宅裏梅

 

금교엔 눈이 쌓이고 얼음도 풀리지 않아

계림의 봄빛 아직도 완연히 돌아오지 않았는데

예쁘구나, 봄의 신은 재주도 많아

먼저 모랑의 집 매화나무에 꽃을 피웠네

 

 (2) 와룡백매

      수령 15여 년생이고 향이 짙은 백색의 겹꽃이 핀다.  

 

 

남산의 와룡매를 보러 오게 되면  안중근의사를 떠 올리지 않을 수 없다.

대한국인 안중근의사가 쓴 "見利思義 見危授命"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國家安危 勞心焦思"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라고 새겨진 두 개의 선돌이 동녘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다.

마음이 숙연해진다.

 

安重根 (1879. 9. 2 ~ 1910. 3. 26)

대한제국의 교육가, 사상가, 독립운동가, 대한의군 참모중장이자 특파독립대장이다.  본관은 순흥, 고려조 명현 안향의 26대손이다.

어려서 안응칠(安應七)이라는 아명으로 불렸으며, 천주교 세례명은 성 토마스였다. 동학 농민 운동 당시 아버지 안태훈이 동학군을 정벌하는 데 함께 참여하였고, 구한 말에는 학교 설립과 교육운동과 국채보상운동을 하였으며 한때 복권 사업과 비슷한 채표회사(彩票會社) 활동을 하기도 했다.

1905년 대한제국을 사실상 일본 제국의 속국으로 만든 제2차 한일 협약이 체결된 것에 저항해, 독립운동에 투신한 그는 1909년 10월 26일에 청나라 길림성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사살했다.

 

見利思義 見危授命
國家安危 勞心焦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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