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9. 11:09ㆍ도보여행기/동해 해안선 도보 여행기
동해 해안선 도보 여행기 (다대포에서 포항-울릉도까지)
(2007.6.12- 6.20)
머리말
제주도 해안선 도보 여행을 끝 마친 보름 후, 동해 해안선 도보 여행을 떠나려 일정 계획을 수립하였으나 여러가지 생각지 못하였던 일이 생기고,
큰 누님이 세상을 떠나는 애석한 일이 생겨 차일피일 지연되었다.
장마 전선이 다음 주부터 제주도에 상륙한다는 일기예보도 있고 하여 하루라도 빨리 도보 여행를 결행하기로 하였다.
지난번 도보 여행시 경험을 토대로 배낭 무게를 최소화 하기위해, 몇 번이고 물건을 추려내고 엄선하여 마무리 지었다.
서울-김해공항-다대포-몰운대-태종대
2007. 6.12 화요일
예매한 보너스항공권으로 탑승한 비행기가 김포공항을 이륙한지 1시간 후 부산 김해공항에 착륙한다.
배낭을 찾아서 어깨에 메고, 다대포 행 버스를 타기위해 공항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리니 다대포 해수욕장 옆이다.
이번 도보 여행의 상징적 출발지로 생각한 다대포 몰운대를 향하여 힘찬 발걸음을 내 디딘다.
오른 쪽으로 넓게 펼쳐진 다대포 해수욕장 백사장을 가로 질러 걸어간다. 해풍이 불어온다. 툭 트인 전망으로 가슴이 시원하다.
백사장 끝까지 걸어가서 몰운대 오르는 아스팔트 포장 도로로 들어선다.
낙동강 하구의 최 남단으로 다대포 서남쪽 해발 78m의 몰운대는 오래전에는 몰운도란 섬이였다. 지금은 낙동강에서 내려오는 흙과 모래 퇴적물이 오랫동안 쌓여 다대포 육지와 연결되었다.
낙동강 하구에, 안개와 구름이 끼는 날에는 그 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沒雲臺라고 하는 지명을 갖게 되었다.
다대포 객사를 지나 정운 장군 순직비로 들어 갈려하니 군부대 정문이 가로막는다. 출입 금지 지역이라고 팻말을 붙여 놓았다. 몰운대를 해안가로 한바퀴 돌려고 옆길로 내려서니 밧줄이 매달려 있다. 밧줄을 잡고 조심조심 해안 몽돌밭에 내려선다. 해안선을 따라 걸어간다, 절벽이 앞을 가로막아 더이상 갈 수가 없다. 다시 밧줄을 잡고 올라와 부대 정문앞에서 되돌아 길을 따라 걷는다. 한참 가니 화손대 이정표가 나온다.
화손대!
바로 이곳이 낙동정맥의 맨 끝자락이 대한해협으로 빠져드는 곳이다.
풍치 좋은 몰운대를 한 바퀴 돌고 나와 시내 버스를 타고 태종대로 향한다. 저녁 7시다.
저녁 식사 후 오늘 유숙할 태종대 입구 24시 온천 찜질방으로 향한다.
오늘은 일찍 쉬기로 한다. 명일의 이른 새벽 출발을 위하여.......
태종대- 영도대교-자갈치시장-관광유람선터미널-해운대-동백섬-달맞이고개- 청사포-송정해수욕장-해동 용궁사-대변리
2007.6.13 수요일
배낭을 메고 온천을 나오니 새벽 5시 48분이다. 벌써 해가 뜬 것 같다.
태종대 정문을 지나 잘 포장된 길을 따라 걸어 오른다. 옆으로 관광 다누비 열차가 줄지어 서있다.
태종대는 신라 태종 무열왕이 삼국을 통일하고 이곳에서 활을 쏜 곳이라 하여 이름하였고, 이곳 최고봉은 해발 250m이다. 남쪽 전망대에서는 대마도를 조망할 수 있으며, 낙엽수가 120종 새들이 60여종이 있다한다.
전망대에서 망망한 바다를 바라본다. 등대로 가는 계단길을 내려선다.
전체적인 외관 조형이 아름답게 건립된 영도등대다. 등대 본 건물및 전망대 등 이곳저곳 둘러보고, 되돌아 내려 돌 길을 따라 걷는다 . 오른쪽은 벽화를 그려놓은 듯한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저 있고, 왼쪽은 아득한 낭떠러지 절벽이다. 모자상, 신선암이 보인다.
영도등대에서 계단을 밟고 다시 길위로 올라서니, 아침 산책을 하는 사람과 조깅을 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무리에 섞여 한참 길을 오르내리며 걸어가니 태종사가 나타난다.
경내를 둘러보고 태종사를 나서니 6시50분이다.
버스를 타고 영도다리 앞에서 하차한다. 유서 깊은 영도다리를 걸어서 건너기로 한다.
'도개식 영도대교 기념비'와 '현인 노래비' 가 서 있다.
영도다리
일제 때인 1934년 개통된 부산 최초의 연륙교다. 길이가 214.63m 도개식으로 부산 방향으로 31.3m 를 들어 올려 1,000t 급의 기선이 지나가도록
설계되었다
6.25 전쟁 당시, 부산이 임시 수도가 되었던 시절에 전국에서 모여든 피난민들의 애절한 사연이 많이 얽히었던 곳이였고, 영도 출신 가수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대중가요는 그 당시 애절하고 고달펐던 시민의 심금을 울렸었다.
그 시절 그 사람들의 마음 한자락을 떠 올려보면서, 영도 다리를 걸어간다.
그때 그 시절의 아픈 기억을 아는지 모르는지 양 해안으로 정박해 있는 수많은 배들이 무심해 보였다.. 옆으로 신 부산대교도 보인다.
영도대교를 건너니 오른 쪽으론 제2롯데월드 건립 기초공사가 한창이다.
왼편으로 길을 잡는다. 자갈치 시장에 도착하니 아침 7 : 46분이다.
아구탕을 주문하여 아침 식사를 한다.
자갈치 시장!
1945년 광복 후 시장이 형성되었고, 당시에는 남포동 시장이라고 불렀다.
자갈밭에 있었던 시장이기에 자갈밭과 곳,장소를 나타내는 '처'가 경상도 발음 사투리로 '치'가 되어 자갈치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
북적거리는 시장안은 사람 냄새가 묻어난다.
자갈치 시장 안에도 현대식 건물이 들어섰고, 또한 개발이 진행 중이이서 불원간 상당히 변모될 것 같다. 해변으로 고래고기 파는 천막 간이 음식점이 줄지어 서있다.
제2롯데월드 공사 현장을 돌아 근처에 있는 관광유람선 터미널에 도착하니 8시 28분이다.
9시발 관광 유람선에 승선한다. 이 유람선은 북항에서 출발 부산대교 영도대교 밑을 지나 ,남항 자갈치 시장 송도해수욕장 앞을 통과하여, 태종대를
돌아 오륙도 이기대 광안대교가 있는 수영만을 지나, 해운대에 도착하는 편도 유람선이다.
날씨는 잔뜩 흐리고 바람이 강하게 분다.
유람선은 오륙도 앞을 지난다. 4개의 섬 그리고 조금 육지쪽으로 가까운 5번째의 섬은 밀물 때는 한 개의 섬으로, 썰물 때는 두 개의 섬으로 보인다.
그래서 5개 또는 6개의 섬이 되기 때문에 오륙도라 불리게 되었다한다.
바로 이섬이 1개가 됐다 두개가 됐다 한다. 지금은 썰물이라 두개로 보인다
광안대교가 보인다. 동백섬과 누리마루 아펙하우스가 보인다. 해운대 해수욕장을 바라보며 해운대 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10 : 30분이다.
터미널을 나와 해운대 해수욕장으로 향한다.
해운대 백사장 옆으로 산책로와 도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도로를 따라 호텔과 리조트 건물이 즐비하게 서있다. 그 뒤편이 해운대 시가지다. 고층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해운대 해수욕장의 백사장 폭은 좁은 편이다.
아마도 점점 침식 되어지는 것 같다.
해송밭도 지나고 백사장 끝 조선호텔 앞 옆길로 올라서니 동백섬가는 길이다
해운대 석각 안내판이 있다
고운 최치원이 이곳을 지나다가 자연경관을 음미하며 거닐다 암석에 해운대라 썼다 한다.
동백섬 누리마루 아펙하우스 앞에는 유치원생이 가득하다. 관람하기 위해 줄을 서서 대기 하고 있는 중이다.
동백섬 산길을 따라 오른다. 최치원 동상과 해운정이 있다
해운대 해수욕장 산책로로 다시 되돌아 나가 해안 도로를 따라 걷는다. 달맞이 고개를 넘는다
12 : 30분 달맞이 길에 있는 해월정에 도착한다.
‘장금이 시원한 대구탕 전문점’에서 식사를 한다. 종업원에 부탁하여 수통에 차가운 물을 가득 담고 길을 재촉한다. 13 : 15분이다
달맞이 길 도로 아래 해안선 쪽에 동해남부선 철길이 보인다.
고개를 넘으니 아름다운 청사포 선착장이 내려다 보인다.
가쁜하게 송정 해수욕장을 통과한다.
시장기를 느껴 시간을 보니 15 ; 37분이다. 열무국수 음식점에 들어가 국수 한 그릇을 단숨에 해치운다.
밖을 나서니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배낭에 카버를 씌우고, 우의를 입고 출발한다.
부산 해동용궁사(海東龍宮寺)
큰 도로에서 우회전하여 큰 바위에 새겨진 '불래도'란 이정표를 따라 걸어간다. 주차장을 지나니, 교통안전 기원탑이 보이고, 춘원 이광수 시비도 보인다. 해동용궁사 시비에는 그 유명한 나옹선사의 시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용궁길 86(시랑리)에 있는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 의 말사이다. 보통 산 속에 있는 일반적인 사찰과 달리 탁 트인 동해 를 마주하고 있어 관광지로 유명하다.
도열한 십이지상을 지나, 용문석굴로 들어선다. 108 돌 계단을 밟고 내려 간다. 바닷속 용궁에 들어가는 듯 하다. 옆으론 석등이 서서 호위 해 준다.
약사여래불을 지나 불이문이라 쓰있는 반월교 돌다리를 건넌다. 오른쪽으로 보니, 소원성취 연못이 내려다 보인다. 소원성취를 빌며 동전을 던져 놓는 곳이다. 동전이 연못 속에 가득하다.
돌다리를 건너니 절 본마당이 나온다. 진신 사리탑이 보이고 , 여의주를 물고 있는 청동으로 만든 비룡상이 보인다.
기와불사를 한다. 기와불사 담당 노 보살이 한가지 소원을 구체적으로 쓰라한다. 대웅보전에 참배한다. 대웅보전 뒤로는 거대한 해수관음 입상이 동해를 바라보고 있다.
용궁사 경내는 어깨를 부딪쳐 걸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용궁사를 되돌아 나오려는데, 비가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한다.
해동 용궁사!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시랑리 동해의 최남단, 기암 절벽위에 세워진 해동 용궁사는 1376년 나옹화상 (1320-1376) 혜근이 보문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 된것을 1930년대 초에 운강스님이 보문사를 중창하였고, 1974년 정암스님이 관음도량 복원을 발원하고 백일기도 후 회향하는 날 꿈에 백의관음이 오색광명을 놓으며 용을 타고 승천하는 모습을 보고 해동 용궁사로 사명을 바꾸어 복원하게 되었다.
바다와 용과 관음대불로 이루워진 해동 용궁사는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이기도 하다.
우의를 꺼내 입는다, 반월교를 걸어나와 지방도로 큰길을 걷고 또 걷는다. 비가 오락가락 한다. 숙소를 잡기 위해 마을 길로 들어선다.
오토바이를 탄 우체국 여자 택배원이 보여 근처에 24시 찜질방이 있는냐고 물으니 한참을 생각하더니 조금 더 가면 길가에 해동 황토 찜질방이 있단다. 고맙다 인사하고 걸어간다
비가 또 강하게 뿌리기 시작한다. 바람도 세차게 분다.
길다란 황토집이 보이고, '해동 황토 찜질방' 간판이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한 아주머니가 황토방에 장작불을 때고 있다. 연기가 집안에 자욱하다. 시골 옛집 풍경이다.
락커룸에 짐을 푼다. 샤워기만 있는 작은 욕실에서 목욕한 후, 사람도 없는 다소 썰렁한 휴게실 방에 지친 몸을 누인다. 귀중품은 반드시 관리소에 맡기라는 주의 안내문이 생각나, 다시 내려가 지갑과 카메라를 맡기고 장작불을 때서 따끈해진 황토방에 들어가 들어누우니 그제서야 온몸이 풀린다.
잠이 오지 않아 천막을 치고 평상을 놓은 야외 휴게실에서 TV를 본다. 천막을 때리는 '후두둑' 빗방울 소리가 거세다. 비가 장대같이 쏟아지고 있다.
나그네의 외로운 밤은 깊어만 간다.
대변리-기장-일광-신평리-동백리-임랑리-월내리-효암리-서생-나사리-간절곶-진하 해수욕장
2007.6.14 목요일
5시에 일어나 밖을 보니,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다.
배낭에 레인카버를 하고, 하의도 고어텍스 바지로 갈아입고, 판쵸 우의를 배낭위에 걸쳐 입고, 비에 대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황토 찜질방을 나서니 5시 45분이다
속보로 빗속 길을 걸어 기장을 지나고, 일광을 지나고, 동백.임랑을 지나 월내교를 지나 월내 사거리에 도착한다. 비는 이제 가늘어져 오락가락한다.
우측으로 고리원자력 발전소가 보인다.
‘원자력 발전소 고리1호기 장례’ 플랜카드가 전봇대에 걸려있다.
고리 원자력 발전소 앞 해안길로는 갈 수 없단다.
효암리로 돌아 해안길로 들어선다. 신고리 1,2,3,4호기 건설공사가 한창이다.
서생을 지나고 나사리를 지난다. 펜션촌을 지나 간절곶에 도착한다.
간절곶!
간절이라는 명칭은 먼 바다를 항해하는 어부들이 동북이나 서남에서 이곳을 바라보면 긴 간짓대처럼 보인다 하여 간절곶이 불렀다 한다. 곶이란 육지가 뽀족하게 바다로 돌출한 부분을 가르키는 순수 우리말이다. 이곳은 한반도와 유라시아대륙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이다.
2007년1월1일 일출시간은 07:31:07이다.
전국의 순위별 일출시간 간절곶 07:31:07
해운대 07:31:53
호미곶 07:32:30
성산일출봉 07:37
정동진 07:38:55
간절등대는 금일 개방하지 않음 팻말이 보인다. 굉장히 크게 만든 소망우체통이 보인다.
간절곶 포장 카페에서 카푸치노 한잔을 주문하여 마신다.
강한 바람이 불어오는 간절곶을 떠나 뚜벅뚜벅 걸어간다. 해안선을 따라 걷는다.
어느듯 진하 해수욕장에 도착한다. 14시 30분이다.
진하해수욕장은 모래 해안선이 길고 크고 넓다. 우중에 걸어온 길이 33km 다. 오늘은 일찍 숙소를 정하고 쉬기로 한다.
해수욕장 근처에 민박을 정한 후, 짐을 풀고 옷을 벗어 세탁한다.
진하해수욕장-서생교-우봉리-온산공단-개운교-세죽마을-용현공업단지-석유화학단지-장생포-일신해수욕장-울기등대-대왕암공원-방어동
2007.6.15. 금요일
행장을 꾸려 민박집을 나서니 새벽 5시다. 날씨는 잔뜩 흐려 있고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31번 국도를 따라 걷는다.
회야강을 가로지른 서생교를 지난다.우봉리 삼거리에서 우봉항을지나 해안가 길로 온산공단을 통과하기로 하고 당월리 방향으로 길을 잡고 걸어간다.
당월리 31번국도가 끊기고 기계공장 출입구가 나온다 .경비가 닥아오며 막다른 길이라고 말한다. 즉 31번도로가 바뀐 것이다. 할수없이 오던 길을 되돌아 나와 새로 생긴 31번 도로를 걸어 온산공단을 가로질러 걸어간다.
온산국가산업단지!
1974년 지정된 울주군 온산읍 일원에 있는 대단위 중화학 임해 공업단지이다.
동해남부선 남창역에서 공단까지 12.7킬로의 단지 전용철도가 개설되어 있고, 울산 공단과 산업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해외로부터 원자재 수송을 위해
전용 항만 시설이 구비되어 있고,면적은 17.3평방킬로이다. 단지 내에는 쌍용정유,풍산금속,고려아연등 110개 공장이 가동되고 있으며, 비철금속류의
기초 소재 생산과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여 산업의 균형 발전에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울산시는 온산 국가 산업단지의 면적 42만평을 확장하는 개발 계획을 확정하고 현재 확장 공사중이다. 조선업의 활황으로 공장 용지가 부족한 문제를 해결하였다 한다.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갓길이 없는 도로는 참 싫다.
수많은 콘테이너 화물차 정유차 대형트럭등이 옆을 지나갈적엔 위험을 느껴 신경이 곤두선다.
걷기가 불안하고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조심조심 옆 풀섶 위를 걸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외항강이 흘러 바다로 들어가는 하구 개운교에 다다른다.
이 근처에 처용마을이 있고 처용사라는 절이 있다는데 찾아 보기로 한다.
버스정류장에 서있는 한 노인에게 물으니 바로 이마을이 처용마을이란다.
가르쳐준데로 마을로 들어선다.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울창한 나무가 서있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가니 처용사라는 조악한 팻말이 붙어있다.
길을 따라 내려서니 소똥냄새가 풍겨오고 시골가옥이 한 채나타난다. 더 내려서니 논밭이고 막다른곳이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처용사는 아마도 어느개인이 운영하는 절인 것 같다. 찾지않기로 하고 되돌아 나온다.
개운교를 건넌다. 해안길로 접어들어 처용암 안내판 따라 길을 돌아드니 세죽나루터이다.
9시40분이다.
처용암은 황성동 세죽마을 바로 앞에 보이는 바위섬으로 이 바위에서 처용이 나왔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게 되었다 한다.
신라 헌강왕이 이곳에서 놀다가 돌아가려고 물가에서 쉬고 있었는데 낮인데도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짙게 끼어 길을 찾을 수 없었는데 일관이
아뢰기를 동해의 용이 조화를 부리는 것이니 좋은 일을 해주어 풀어야 한다고 했다.
임금이 명령을 내려 근처에 용을 위한 절을 세우라고 하자 구름과 안개가 걷혔다.
그절이 현재 울주군 청량면에 있는 망해사이다. 그리고 이곳은 구름이 걷힌 포구라고 해서 개운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동해 용왕이 크게 기뻐하며 왕자 일곱을 거느리고 나와서 춤을추고 음악을 연주했다.
그 가운데 한아들이 임금을 따라 신라의 서울인 경주로 왔는데 그가 처용이다.
임금은 처용에게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게하고 급간이라는 벼슬을 내렸다.
처용이 아내와 동침하는 역신에게 불렀던 노래가 유명한 신라향가 “처용가”이다.
용현 중공업 단지를 통과하고 울산 석유화학 단지를 지난다.
장생포가 가까워지고 있다. 모비스 공장앞을 지나 언덕을 허위허위 오른다.
이 고개를 넘어서면 장생포동 해안길이다.
13시가 되어 장생포항에 도착한다.
장생포엔 고래고기 음식이 유명하다던데 하면서 고래고기 전문음식점으로 들어간다.
2인분에 메뉴별로 3만원 이상씩 적혀있다. 1인분은 판매 않는다 한다.
2인분을 주문하기도 그렇고 하여 다른 음식점을 찾기로 한다.
한번쯤 안먹은 음식을 남겨 두어야 훗날 맛볼 수 있으리라 자위하면서....
생물 아구탕으로 점심 식사를 한다.
점심 식사후 장생포 고래박물관으로 향한다. 고래 박물관을 관람한다.
옛 고래잡이 전진 기지였던 장생포에 국내 유일의 고래 박물관을 건립하여, 1986년 포경이 금지된 이래 사라져가는 포경 유물을 수집 보전 전시하고 고래와 관련된 각종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해양 생태계 및 교육 연구 체험 기회를 마련하여 유용한 해양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한다.
직접 고래를 잡던 포경선 제6진양호를 원래 규모데로 복원전시하고 있다.
직접 승선 할 수도 있다.
고래박물관옆에는 고래연구소가 있다.
장생포에서 버스를 타고 공원탑정류장에서 내려 방어진가는 버스를 탄다.
일신 해수욕장에 내려 걷는다. 일신 해수욕장을 지나 대왕암 공원을 향한다.
그 입구에 울기스파랜드 24시 찜질방이 보인다. 오늘은 여기서 유숙하기로 정한다.
울기등대에 도착하니 17시다.
일만오천여그루의 해송이 있는 아름다운 대왕암공원과, 문무대왕비 호국 영령의 전설이 담겨져 있는 대왕암이 있다.
대왕암!
문무왕은 죽어서도 호국의 용이 되어 바다를 지키거늘 왕비 또한 무심 할 수 없어, 왕비의 넋도 한 마리의 호국 용이 되어 하늘을 날아 올라 울산을 향하여 동해의 한 대암 밑으로 잠겨 용신이 되었다 한다. 그 뒤 사람들은 이곳을 대왕바위라 불렀고, 세월이 흘러 말이 줄어 댕바위(대왕암)라 하였다.
용이 잠겼다는 바위 밑에는 해초가 자라지 않는다고 전해오고 있다.
방어진항으로 간다. 좁은 골목 길을 이리저리 돌아가니, 방어진 항이 나온다.
저녁 식사후, 울기스파랜드 온천탕에서 피로를 풀고 하루 유숙한다.
방어진-현대중공업-주전고개-주전해변-강동-화암주상절리-읍천-나산리-봉길리해수욕장(문무대왕릉)-감은사지-대본리-전촌리해수욕장
2007.6.16 토요일
아침 5시 울기스파랜드를 출발한다. 날씨는 맑게 개이고 쾌청하다. 바람이 다소 강하게 분다.
몸 상태는 양호하다. 또한 발가락과 발바닥에 테이핑을 해 두었던 까닭에 물집도 잡히지 않았다.
5시 40분 현대중공업정문을 지난다. 6시 한국프렌지앞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주전고개를 오른다.
봉대산을 돌아 오르는 고갯길은 산책로로 잘 조성되어 있다. 마라톤하는 사람과 등산복 차림을 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이곳은 마라톤 오르막 연습코스로 적당한 것 같다.
봉수대 가는 길목부터 내리막 고갯길이다.
고갯길을 내려서니 주전해변이 시원하게 눈앞에 전개된다.
7시43분 봉대산 주전고개 오르기 전 아침식사로 사온 김밥 두줄을 바닷가 주전마을 집 앞 평상에 앉아 먹는다. 동해바다가 눈부시게 빛난다.
멀리 무인등대가 보인다.
주전 몽돌해변은 정말로 아름다운 곳이다. 검은 몽돌이 넓게 깔려 펼쳐진 해변은, 가히 환상적인 풍경이다.
아름다운 몽돌을 밟으며 걸어간다. 방파제에 큰 파도가 밀려와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진다. 끊임없이....
하늘은 어찌 저리도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지...
몽돌 해변가에서는 밀려와 부서지는 물보라를 아랑곳 하지않고 서서 낚시하는 모습이 보인다.
8시42분 당사항에 도착한다.
10시20분 강동에 가볍게 도착한다. 강동 정자항 일대는 개발 열기가 느껴진다.
앞으로 상당히 발전하고 몇 해 뒤엔 몰라보게 변모 되어 있을 것이다. 약국에서 밴드를 구입한다.
번화한 읍 강동. 정자항을 둘러본다. 사람들로 꽉차있다.
강동엔 해수온천찜질방이 있다.
강동리조트 건설 현장을 지나 강동 화암주상절리에 도착한다.
이곳 주상절리는 수평 또는 수직 방향으로 세워진 다량의 목재더미 모양을 하고 있다.
또한 주상체 횡단면이 꽃무늬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 마을의 이름인 화암은 여기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12시 56분에 양남에 도착한다
뼈다귀탕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또 걷는다. 읍천을 지나 나산리에 다다른다
14시30분 월성원자력발전소 입구 공원에 도착한다.
월성원자력발전소를 감싸안은 뒷산 등산길을 오르듯 굽이굽이 돌아 오른다. 이 고갯길을 넘어서면 봉길리에 닿게 된다. 아스팔트 길은 뜨거운 한낮의
태양으로 인하여 열기를 내 뿜고 있다.
땀을 비오듯 흘리며, 1시간여 걸려 고갯길을 넘어서니 갈림길이다. 좌측 감포, 우측 월성원자력발전소다.
눈 앞에는 동해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저 있다. 너무나 무더워 갈림길 나무 숲속에 들어가 휴식을 취한다.
좌측 해안선을 따라 걸어가니 봉길리 해수욕장이다.
문무대왕릉!
'토함산 뒤 쪽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대종천을 이루고, 그 물줄기가 동해로 흘러드는 감포 앞 바다 봉길리 해수욕장이 들어선 이곳 해안에서 서면 바닷쪽으로 200미터 떨어진 바위섬, 문무왕의 산골처 또는 수중릉으로 알려진 대왕암이다.
바위 한 가운데가 못처럼 패어있고 둘레에 자연암석이 기둥모양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워진 모습이다.한변의 길이 3m 폭 2.2m의 두께 0.9m의 돌이 얹혀져 있다. 못안의 물은, 돌을 약간 덮을 정도이며 거센파도에 아랑곳 없이 항상 맑고 잔잔히 흐르도록 되어있다. 동서남북의 십자로를 통하여 (이 십자로는 약간의 인공으로 깎은 흔적이 있다 함) 동쪽에서 들어와 물이 서쪽으로 난 수로의 턱을 천천히 넘어 다시 바다로 흘러나간다. 못안 돌밑에 문무왕의 유골장치가 있다는 설이 있다.'
문화 사적 해설가의 이야기로는 KBS 역사 스페셜팀에서 이 못안 돌을 기중기로 들어 올려 유골 봉안 여부를 확인하려 하였으나, 경주 김씨 문중의 반대로 작업이 무산되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는 '신문왕은 681년 7월7일 즉위하였다. 아버지 문무대왕을 위하여 동해변에 감은사를 세웠다. 문무왕이 왜병을 진압하고 이 절을 짓다가 마치지 못하고 돌아가 바다의 용이 되었는데 그 아들 신문왕이 즉위하여 682년에 마쳤다. 금당 아래를 파헤쳐 동쪽에 구멍을 내었으니 용이 들어와 서리게 한 것이었다. 생각건대, 유조로 장골케 한곳을 대왕암이라 하고 절은 감은사라 하였으며 그후 용이 나타난 것을 본곳을 이견대라 하였다.'
죽어 호국의 용이 된 문무대왕!!
수중릉은 세계에서 하나뿐인 희귀릉이다..
산더미같은 파도가 밀려와 대왕암에 부딪치며 물보라를 일으킨다.
문무대왕의 호국 충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흰 갈매기는 무심히 날으고 있다.
대왕암과 관련이 있는 감은사지를 향하여 출발한다.
동해구 앞 대종천을 가로지른 대종교를 건너 좌측으로 꺾어 돌아 감은사지로 향한다.
입구에 주차장을 넓게 만들어 놓았다.
감은사지 동서 석탑 2기중 서탑은 지금 해체 복원 중이다.
감은사지!
'사적31호 절 이름은 본래 나라를 일으킨다는 의미에서 진국사였으나, 신문왕이 부왕의 호국 충정에 감사해 감은사라 고쳐불렀다. 1960년과 1979-80년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이탑식 가람 배치로 남북보다 동서 회랑의 길이가 길며, 양탑의 중앙부 뒷면에 앞면 5칸 옆면 3칸의 금당터가 확인되었다. 또 금당의 바닥 구조가 H자형의 받침석과 보를 돌다리처럼 만들고, 그 위에 직사각형의 석재 유구를 동서 방향으로 깔아 마치 우물마루 모양으로 된 것은 삼국유사의 기록과 일치한다. 감은사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3층 석탑 2기는 국보 111호로 높이 13.4m 동서로 건립된 두 탑의 규모와 형식은 동일하며 현존하는 석탑 중 거탑에 속한다.'
감은사와 대왕암이 얽히고 설킨 이야기 거리가 많다.
감은사지 3층석탑과 금당터를 보고 발길을 되돌려 나와, 대본리로 간다. 오르막 고갯길을 오르니 동해구 비석이 나무숲 속에 서있다.
이곳에서 대종천과 동해구 대왕암이 훤히 조망된다. 용을 보았다는 이견대다.
길을 재촉하여 31번 해안선 국도를 따라 걸어간다.
18시40분 전촌리 해수욕장에 도착한다. 24시찜질방이 있는 줄 알았는데 24시는 아니란다.
감포읍 내에도 24시 찜질방은 없다고 한다.
다리가 지치고 하여 민박겸 음식점을 하는 집에서 물회로 저녁 식사하고, 유숙키로 한다 . 자고 갈 방 시설이 너무 열악하다. 너무 지쳐 다른 집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아 울며 겨자 먹는다.
금일 44km 걸었다.
전촌리해수욕장-감포-계원-신창해수욕장-구포-구룡포-두일포-호미곶
2007. 6.17 일요일
오늘은 호미곶 해맞이 광장까지 약 53km를 걸어 가야한다.
해 뜨기전 서둘러 일어나 짐을 꾸려 민박집을 나서니 05 : 00시다. 여명이 밝아 오는 해안길을 재촉하 듯 부지런히 걷는다.
05 :30분 감포항에 도착한다.
감포항은 규모가 작지만 아기자기하다. 등대가 솟아 있으며, 많은 어선이 드나드는 동해남부의 중심 어항이다.
이른 새벽인데도 식당문이 열려있다. 할머니가 문 앞에서 일하고 있는 음식점으로 들어가, 아구탕을 주문하니 큰 냄비 가득히 끓인 아구탕을 내 놓는다. 많이 드시란다. 상당한 량의 아구탕을 한점 남기지 않고 배불리 먹고, '잘 먹었습니다' 인사한 후 06:10분 식당을 출발한다.
오르막 길을 올라 국도로 걸어간다.
두원을 지나고 양포항를 지나 신창 해수욕장을 09:25분에 통과한다.
햇살이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큰 배낭을 울러 멘, 반바지 입은 젊은 두 사람이 나를 추월하여 가다가 해송이 우거진 숲으로 들어간다. 배낭에 거꾸로 매단 양말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구포 휴게소를 막 지나니, 소나기가 퍼 붓기 시작한다. 마침 바로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다. 비를 피한다. 운이 좋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린 후, 다시 출발한다. 구룡포가 가까워진다.
구룡포 읍 입구에서 갈림길이 나온다. 우측 해안선을 따라 걷는다.
구룡포항은 항만 증축 공사와 배후지 개발이 한창이다. 아마도 조금 지나면 몰라보게 변모될 것 같다.
13 :30분 구룡포항 부두에 들어선다.
구룡포항!
우리나라 지도의 호랑이 꼬리 부분에 위치한 아름다운 항구이다. 동해남부에서 조업하는 어선들의 집결지로서 수많은 어선이 출 입항하는 항구이고, 한때는 고래잡이로 유명하였으나 지금은 오징어 잡이 배와 대게 잡이 배가 포경선을 대신하고 있다. 또한 과메기의 본 고장답게 청어 정어리 꽁치 잡이 어선도 많다.
엄청난 어선이 정박하여 있는 구룡포항 부두에서 점심 식사를 한다.
14 :15분 부두를 출발한다. 이제 부터 대한민국 국토의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부분의 해안선을 따라 걷는 것이다.
구룡포 해수욕장을 지나 15 ; 20분 두일포에 도착한다. 뜨거운 햇살을 뚫고 걷고 또 걷는다. 석병을 지나고 다무포를 지난다.
다리가 이제는 상당히 무거워진다. 해안을 따라 쉬임없이 걸어 왔으니 말이다.
송림촌을 지나 대천교를 지나, 호미곶 해맞이 공원에 도착한다. 시간은 17 :30분이다. 전촌리 해수욕장에서 출발하여 꼬박 12시간 30분이 걸린 셈이다.
호미곶!
'한반도를 호랑이의 형상으로 보았을 때 호랑이의 꼬리처럼 동해로 불쑥 솟아 나간 곳에 호미곶이 있다.
호미곶의 해맞이 광장은 만여평의 부지에 기념 조형물,성화대,불씨함,연오랑세오녀상,공연장 등이 건립되어 있다.
이곳 광장의 기념조형물인 상생의 손은 청동 소재로 바다와 육지에 각각 설치하여 마주 보는 형상으로 상생과 화합을 상징하고 있으며, 변산반도에서 가져온 20세기의 마지막 햇빛,날짜 변경선에 위치한 피지 섬과, 이곳 호미곶 새 천년 첫 햇빛 등이 합화, 안치된 성화대의 불씨는 각종 국제대회의 씨불로 사용되고 있다.'
호미곶 끝단 방파제에 앉아 바다에 솟아 있는 상생의 손을 망연히 바라본다.
호미곶 등대박물관은 폐관 시간이어서 관람하지 못하고, 옆 해안가로 돌아 나간다.
갈증과 더위를 식히기 위해 팥빙수 한그릇 사 먹으니 가슴이 온 통시원해 진다.
오늘 숙소로 에정하였던 24시 대보 해수탕으로 들어간다. 손님이 적어 주말인 토요일이에만 24시간 운영 한단다.
하는 수 없어 인근 모텔에 숙소를 정하고 짐을 푼다. 옷가지를 세탁하고, 피곤한 몸을 침대에 누인다.
오늘은 이때까지의 도보 여행중 하루에 최고 많이 걸은 날로 기록되어 질 것 같다.
호미곶-대보항-호미곶댇항-대동배리-발산리 -홍환해수욕장-임곡-포스코-형산교-송도 해수욕장-포항 여객선 터미널
2007.6.18. 월요일
05 :30 숙소를 출발한다.
오늘은 호랑이 꼬리 끝을 돌아 걷는 날이며, 영일만을 바라 보며 걷는 환상의 해안선 따라 걷기가 될 것 같다.
큰길로 나가지 않고 해안 마을길로 걸어 들어가 해안선을 따르기로 한다. 구만1리 마을 길로 간다.
대보항 옆길을 걸어 호미곶 포구를 지난다.
호미곶!
'이곳은 한반도의 최동단에 위치한 호랑이 꼬리 虎尾串이다.
고산자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이곳을 일곱번이나 답사한 뒤에 우리나라의 가장 동쪽임을 확인했다고 한다.
풍수지리학자인 격암 남사고는 이곳을 우리나라 지형상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고 기술하면서 천하의 명당이라고 했다.
호랑이는 꼬리의 힘으로 달리며 꼬리로 무리를 지휘한다고 한다.
호랑이 꼬리는 국운 상승과 국태민안의 상징으로 꼽힌다.
일제는 한반도를 연약한 토끼에 비유해 이곳을 토끼 꼬리로 비하해서 부르기도 했다.
일제는 특히 호미곶에 쇠말뚝을 박아 우리나라의 정기를 끊으려 했다.'
아침해가 먹구름사이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다.
가슴이 벅차 오른다. 나의 이 두 발로 동해로 삐죽이 내민 호미곶을 걸어 간다.
'호랑이 꼬리에 나무를 심자' 비석이 보인다.
까꾸리게(鉤浦溪)를지난다. 이 지역은 풍파가 심하면 청어가 밀려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며 까꾸리(鉤)로 끌어냈다는 뜻에서 지어진 지명이다.
이곳 해변에 독수리 바위가 있다. 독수리 바위는 오랜 세월 풍화 작용으로 조각된 바위로, 형상이 독수리 부리를 닮았다하여 붙혀진 이름이다. 호미곶의 땅끝인 이곳에서 서쪽으로 지는 석양의 노을이 아름답다고 한다. 사진 작가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앞구만을 지나 비포장 길을 걸어 나가니, 분얼포에서 마침내 포장된 차도와 만난다.
이제 영일만을 바라보며 구불구불한 해안 도로를 오르내리며 걸어간다.
영일만 건너 저 멀리 포스코 굴뚝이 보인다. 영일만 푸른 물은 유유히 태양속에 넘실대며 빛나고 있다.
대동배리를 지나고 홍환해수욕장을 지난다. 임곡온천랜드도 지난다. 보트를 탄 해병대원들이 힘차게 구호를 외치며 노를 젓고 있다.
청룡회관앞을 지난다.
이제 31번 국도로 올라서서 걷는다. 호미곶 마라톤 대회에 참석한 기억이 난다. 31번 국도로 올라서 조금 간 지점에 풀코스 반환점이있었다.
호미곶 해맞이 광장에서 출발하여 이곳 반환점에서 손바닥에 도장찍고 되돌아 뛰었던 기억이 난다.
세계적인 철강회사 포스코 앞을 지난다. 14 :00 형산교에 도착한다.
형산강은 울주군 두서면에서 발원하여 경주와 포항시내를 거쳐, 영일만으로 흘러든다.
포항시와 경주시의 접경에 형산과 제산이 있어 형산강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형산교를 건너자 마자 우측으로 내려서 계단을 밟고 내려간다.
형산강을 따라 제방에는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를 잘 조성해 놓았다. 강변에는 체육시설 과 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검푸른 형산강이 도도히 영일만으로 흘러들고 있다.
형산강 강가 길을 걸어 영일만으로 향한다. 뒤돌아 보니 형산교가 아름답게 걸려다.
강 건너편은 포스코다. 대단위 공장과 굴뚝이 웅장하게 우뚝우뚝 솟아 있다.
강이 끝날 무렵 좌측으로 들어서니 바로 송도 해수욕장 백사장이다.
백사장을 가로질러가 송도동 앞을 지나니 수많은 배가 정박해 있다. 죽도1동과 동병동을 지나, 16 ; 30분 포항 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한다.
삼계탕으로 저녁 식사하고, 모텔에 들어 빨래하고 하루밤 유숙한다.
오늘도 43km는 족히 걸은 것 같다.
포항여객선터미널-울릉도 도동항-행남등대-저동항-봉래폭포-등대박물관-대아리조트
2007.619 화요일
늦으막한 07 :30분 숙소를 나선다.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 해 보니 울릉도 행 썬플라워호는 10 :00시 출발이다. 시간의 여유가 있어 아침 식사한 후,
터미녈 이곳 저곳을 돌아다녀 본다.
10 :00 정각에 출발한 쾌속선 썬플라워호는망망대해를 항해하여 13 :15분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한다.
도동항은 포항 묵호 후포를 출발한 여객선이 들어오는 울릉도의 관문이다.
울릉도 관광의 시발점으로 숙박시설과 음식점이 밀집해 있는 번화가이다.
도동항 양쪽에는 망향봉과 향나무가 밀집해 있다는 행남봉이 우뚝 서 있어 아늑한 느낌을 준다.
줄을 서 하선하자 마자 인파 속에 곧 묻히고 만다. 바로 우측 행남 등대로 가는 해안 산책로로 들어선다. 기묘한 바위 절벽 옆으로 만들어 놓은 아슬아슬한 해안 산책로는, 쪽빛 바다위를 걸어가는 듯 하다.
그림같은 해안 산책로가 끝나고, 흙 길을 걸어 올라 행남 등대로 향한다.
행남 등대 이정표에서 더 진행 할려니 등산객 한 사람이 오더니 행남 등대 쪽은 공사 중이어서 갈 수 없단다.
산을 넘으면 저동항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자기는 저동에 사는 사람이라며 자기를 따라 오라 한다. 고맙다 먼저 가시라 하고는 잠시 휴식을 취한다.
산길을 향해 오른다. 이정표가 잘 설치 되어 있다.
산을 넘어 기슭을 타고 내리니, 저동항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행남등대도 보인다.
절벽 밑으로 해안 산책로 공사를 하고 있다. 상당 부분 공사가 진행되어 있다.
아마도 행남 등대에서 연결되는 해안 산책로인 둣 하다.
도동에서 저동까지 연결되는 해안 산책로가 머지 않아 완공될 것 같다.
가파른 길을 걸어 내려 마을로 들어서니 저동항이다.
저동항은 1967년 어업전진기지로 지정되었다 한다. 남 방파제 580m 북 방파제 275m 규모이다.
울릉군내 350여척 어선 가운데 300여척이 정박해 있다. 태풍등 기상 특보시 동해 먼 바다에서 조업 중인 선박의 대피항이기도 하다.
또한 울릉도 오징어의 대부분이 이 저동항에서 취급된다 한다.
저동항 방파제로 걸어간다. 방파제 옆에 촛대바위가 서 있다. 일명 효녀바위라 불리우기도 한다.
저동항 앞바다에 북저바위가 보이고 멀리 죽도도 보인다.
아름다운 저동항을 뒤로하고 봉래폭포로 향해 걸어 간다. 가파른 오르막 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 오른다.
한참을 오르막과 씨름하고 있을때 봉고차가 옆에 서더니 봉래폭포 입구까지 태워다 주겠다 한다.
입구 매표소앞에서 내린다. 음식점 사장인 듯 하다. 풍혈을 지나 봉래폭포에 도착하니 16 :00시다.
전망대에서 봉래폭포를 감상한다. 45m 삼단 폭포다.
이 물이 흘러 저동천이 되고, 저동천 물은 흘러 저동항으로 들어 간다.
봉래폭포 아래에 있는 24시찜질방이 오늘 숙소로 점 찍어 놓았었는데 막상 찾아 가 보니, 영업 중지 팻말이 걸려 있다.
부도가 나 현재 영업하지 않는다고 한다. 낭패다. 도동항으로 되돌아 가기로 결정한다.
도동항 뒷산에 있는 약수공원, 등대 박물관을관람한다. 명일 성인봉 등산을 위하여 안평전 가까이 가서, 민박집에서 자기로 결정하고 사동리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계속 걸어가니 터널을 공사하고 있다. 나선형 형태의 도로를 뱅뱅돌아 올라 고갯길을 넘는다.
사동항이 보인다. 대규모 부두 방파제 공사가 한창이다.
머지않아 울릉신항(사동항)시대가 열릴 것 같다.
할아버지 할머니 두분이 걸어온다. 저 아래 사동리 마을에 가면 민박집이 있느냐고 물으니 없다고 한다. 도동으로 가보라고 한다.
안평전 들어가는 길을 지나쳐 온 것 같다.
다리는 아프고, 해는 늬엿늬엿 지고 있으니, 어쩌란 말이냐. 옆에 대아리조트가 보인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대아리조트에서 일박하기로 결정한다.
명일 아침 성인봉 등산을 위해 등로가 있는 윗쪽 동의 방을 선택한다.
옷을 빨래하여 널고, 명일 이른 출발을 위하여 일찍 잠자리에 든다.
대아리조트-안평전-성인봉-나리분지-송곳산-천부항-현포항-도동-포항-서울
2007.6.20 수요일
04 : 14분 대아리조트를 출발하여, 랜튼을 켜고 뒷편으로 난 등로를 따라 오른다.
05 : 00시 안평전에 도착한다.
여명이다.
영롱한 새 울음소리, 뻐꾸기 소리, 꿩 소리, 온갖 새들의 지저귐 소리에 머리속이 쇄락해 진다.
인적이 없는 푸른 능선 오솔길을 따라 오른다.
돌봉을 지나 쉼터가 있는 넓직한 안부 바람등대에 도착하니 07 : 00시다. 바람등대가 어디에 있나 찾아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안부 양쪽 옥천골 계곡과 봉래폭포 계곡의 골 바람이 골을 타고 세차게 불어 올라친다.
양쪽 골 바람이 불어 올라 시원하게 바람을 맞을 수 있는 이 안부가 바로 '바람등대'인 것 같다.
07 : 20분 성인봉(984M) 정상 표지석 앞에 선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것은 하얀 개스 뿐이다. 시야는 완전 제로다.
안타갑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벗어질 때 까지 무작정 기달릴 수도 없는 일 이어서, 나리 분지로 하산하기로 결정한다.
울릉도!
'동경 130도 54분 북위 37도 29분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 72.56평방km, 인구 1만여명이며, 독도와는 92km 떨어져 있고, 포항에서 217km 떨어져 있다.
오각형 형태의 섬으로 동서 길이 10km, 남북 길이 9.5km, 해안선 길이 56.5km에 이른다.
512년 (신라 지증왕 13) 신라의 이사부가 독립국인 우산국을 점령한 뒤 우릉도.무릉도라 불리다가, 1915년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고 경상북도에 편입되었다. 울릉도는 화산이 두 번 분출하여 형성된 화산섬으로 첫번째 분화구가 나리 분지이고 두번째 분화구는 알봉 분지이다.
섬의 주위에 유인도인 죽도와 무인도인 관음도,공암,삼선암,북저암 등의 부속 도서로 이루어져 있다.
지형이 험준하고 사화산으로 형성된 울릉도는 해발 984m의 성인봉이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바다 속 깊이 거대한 범종 모양의 형태를 가지고 있어 지리학적으로 종상 화산섬이라고 불리운다. 나리 분지를 제외하고는 거의 평지라고는 없고, 해안은 대부분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년간 강수량은 1,485mm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데 그 중의 약 40%가 겨울에 내리는 눈으로 인한 것으로, 눈이 많이 내린다. 평균 적설량은 1m 내외이나 최심 적설량은 약 3m에 이르러 전국 제일의 다설 지역이다.'
이정표를 따라 나리 분지를 향하여 가파른 내리막 나무계단을 걸어 내린다. 한 참을 내려 가니, 인부들이 나무계단 공사를 하고 있다.
샘터를 지난다. 큰 바위를 머리에 인 신령수가 나타난다. 신령스럽다는 신령수 물을 마신다. 이곳 약수는 약초의 내음이 배어있는 듯 하다.
알봉 투막집이 보인다. 아주머니들이 집안 마당의 잡초를 뽑고 있다. 알봉 투막집 앞에서 눈을 들어 보니 산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쳐 있다.
어느 봉우리가 성인봉이냐 물으니, 지금 막 구름이 벗겨지고 있는 저 봉우리가 성인봉이라고 손가락으로 가르킨다.
알봉 투막집을 지나 걸어간다. 알봉 분지의 울릉국화 군락지, 섬백리향 군락지 숲길을 지난다. 나리 투막집을 지나 나리 분지에 도착한다.
길가 넓은 곳에 민박집이 보인다. 시간을 보니 09 : 20분이다.
천부항으로 가는 차도를 택하지 않고, 왼쪽 길을 선택하니 나리분지 공원으로 들어선다.
나리 분지에는 노란 유채곷이 만개해 있다. 때 묻지않은 산과 숲은 청정한 빛을 뿜어내고 있다.
나리 분지 공원을 가로 질러 송곳산으로 가는 산길로 들어 선다. 송곳산 옆 내리막 산길을 걸어 내린다.
우측에 추산 용출소가 있다. 나리에서 스며든 물이 이 용출소에서 하루 5천톤의 수정 같은 물을 솟아나게 한다고 한다.
현재 이 물을 이용하여 수력발전을 하고 있다 한다.
추산 해변가에 송곳산(추산)이 뾰족하게 솟아있다. 추산 정상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구멍이 있다 한다.
추산 앞 바다에는 코끼리 바위(공암)가 서 있고, 밑에는 성불사가 있다.
성불사를 둘러 보고추산 해변에 내려선다.
해안길을 따라 천부항으로 걸어간다.
천부항 선착장에 도착하니 11 ;00다. 마을 길로 들어가 아침 식사를 위해 문 열린 식당을 찾아 들어 갔으나 아직 준비가 안됐다 한다.
선착장에 나와 송곳산과 코끼리 바위 해변을 바라보니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다.
어선이 정박해 있는 천부항에 송곳산이 투영되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해안 도로를 걸어 도동항으로 가기 위해 천부항을 출발한다.
송곳산을 지나고 현포항에 도착한다. 앞으로 터널을 걸어 지나 가야 하는데 위험한 생각이 들어, 이곳에서 버스를 타기로 한다.
한 참을 기다려 버스를 타고 도동항에서 내리니 12:30분이다.
도동항에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우선 목욕탕을 찾아 목욕하고 ,아침 겸 점심 식사를 한다.
독도행 선편은 풍랑으로 금일 출항하지 않는다 한다.
1박2일간의 울릉도 여행을 끝마치기로 하고, 15 :30분 발 포항행 쾌속선 썬플라워호에 승선한다.
3시간 20분 항해후, 18 :50분에 포항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한다.
뉴스에 장마가 내일부터 시작된다고 하고, 피곤도 하여 도보 여행을 여기에서 멈추기로 한다,
고속터미널로 가서 서울행 버스에 탑승하여 귀가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