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노들섬 일몰
일몰(日沒) 박 인 걸 하루 종일 걸어온 길에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서산마루에 간신히 걸린 해는 마지막 노을을 온 누리에 붓는다. 허공을 건너는 머나먼 길은 아찔하고 두려운 모험이지만 무사한 행로의 감사함을 황홀한 빛으로 외어 올린다. 일제히 기립한 나무들은 손을 흔들어 답례하고 때마침 날던 청둥오리 떼도 두 발을 가슴에 모은다. 파란(波瀾)의 날을 곱게 끝내고 숙면(熟眠)에 드는 태양처럼 나 살다 곱게 늙어 소리 없이 사라지고 싶구나.
2023.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