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2019. 5. 9. 21:49시 모음/시

 

지리산 법천골에서

 

 

오월
피 천 득( 1910- 2007)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 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득료애정통고) -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 (실료애정통고) -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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