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진전사지를 찾아서

2010. 10. 31. 08:23문화유적 답사기/양양 진전사지를 찾아서

양양 진전사지를 찾아서

 (2010.10.27)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에 있는 진전사지 답사계획을 세운 지  세 번째만에 오늘 드디어 답사를 하게 되었다.

물치천을 따라 들어가는 마을 길  들에는 베어낸 누런 벼이삭이 눕혀져 있다.

황금 들판은 텅 비어가기 시작한다.

석교교를 건너 둔전리 가는 마을 길 감나무에는 빨간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먼저 부도탑을 보기 위해 삼층석탑을 지나 둔전저수지 옆 산 비탈길을 올라가니 새로 복원한 자그마한 진전사가 보인다.

 

이 절은 우리나라 선종을 크게 일으킨 도의선사가 신라 헌덕왕 13년(821년)에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창건하고 오랫동안 은거하였던 곳으로 염거화상이나 보조선사와 같은 고승들이 이 곳에서이곳에서 배출되었고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선사도 이곳에서 체발득도 하였다.일제 강점기까지 둔전사로 불리어오다 발굴조사를 통해 진전(陳田)이라는 기와편을 발견함으로써 진전사임이 확인되었다.

돌계단이 있는 언덕에는 자주색 꽃 용담과  둥글게 모여 핀 홍자색 산부추가 부도를 지키며 늦가을 찬 바람 속에서도 향을 풍기고 있다.

울울한 소나무 호위 속에 우뚝 서 있는 부도탑 앞에 선다.

천 년 세월이 흐른 이곳 폐사지에 서서 우리나라 석조 부도의 첫 출발점으로 보는 도의선사의 부도탑을 바라본다.

언덕 돌계단을 오르내리며 천 년 세월의 흔적을 더듬는다.

 

"삼층석탑과 부도, 그 두 문화재가 신라 헌덕왕 13년(821년) 도의선사가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창건한 진전사터에 남은 유적의 전부이다. 도의선사는 마조도일의 선법을 이어받은 서당지장(709-788)에게 공부하고 귀국하여, 당시 교종 불교가 절대적이었던 신라에 선종을 소개한 인물이다.

그가 신라에 소개한 그것으로,"문자에 입각하지 않으며, 경전의 가르침 외에 따로 전하는 것이 있으니, 사람의 마음을 직접 가르쳐, 본연의 품성을 보고 부처가 된다"고 외친 혜능(638-713)에서, "타고난 마음이 곧 부처" 임을 외쳤던 마조도일에 이르는 남종선의 골수이다. 도의선사는 '중국에 달마가 있었다면 신라에는 도의선사'라 할 만한 인물이었다.  도의선사는 귀국하여 경전이나 해석하고 염불을 외우는 것보다 본연의 마음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부르짖고 다녔는데, 이는 인간의 평등과 인간성을 중시하는 진보적 사상으로서 신라의 왕권 불교에 대단한 반역으로 여겨졌다. 중생이 곧 부처라 하니 그럴 수 밖에, '마귀의 소리'라고 기존의 승려들에게 심한 배척을 받은 도의선사가 뜻을 품고 은신한 곳이 바로 진전사였다.

도의 선사의 사상은 그의 제자 염거화상에게 전해지고, 다시 보조선사(804-880)에 이어져 맥을 잇게 된다. 보조선사는 구산선문 중 맨 앞에 나오는 전남 장흥 가지산에 보림사를 짓고 선종을 펼친 분이다. 도의선사의 일대기에 대해서는 전하는 바가 많지 않은데, 보림사의 보조선사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이 때문에 달마가 중국의 1조가 되고, 우리나라에서는 도의선사가 1조, 염거화상이 2조, 우리 스님(보조선사)이 3조이다.'

도의선사의 때이른 가르침은 보조선사 시기에 이르러서야 빛을 발하게 되었으며, 이후 선종은 통일신라 하대에 지방 호족들이 절대적인 지원을 받으며 구산선문을 이루었다. 진전사 터는 이처럼 신라 불교가 교종에서 선종으로 교체되는 시기에 그 싹을 틔운 곳으로써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삼층석탑과 부도는 그 상징적 의미를 전하는 증언자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1) 진전사지부도(陳田寺址浮屠)  보물 제439호

 

우리나라 부도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아주 오래 된 부도이다. 석탑의 2중 기단부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부도의 모습이 아직 구체화되기 이전의 형태, 곧 부도의 초기 모습으로 파악된다. (문화유산답사회)

 

"멀리 동해바다가 내다보이는 진전사터 안의 작은 언덕 위에 서 있는 탑으로, 진전사를 창건한 도의 선사의 묘탑으로 추정된다. 도의는 선덕왕 5년(784년)에 당에서 선종을 이어받고 821년 귀국하여 설법을 시작하였으나, 당시는 교종만을 중요시하던 때라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이 절로 들어와 40년 동안 수도하다가 입적하였다. 이 부도는 일반적인 다른 부도와는 달리 8각형의 탑신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 아래 부분이 석탑에서와 같은 2단의 4각 기단을 하고 있어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아낸다. 2단으로 이루어진 기단은 각 면마다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 모양을 새기고, 그 위로 탑신을 괴기 휘한 8각의 돌을 두었는데, 옆면에는 연꽃을 조각하여 둘렀다. 8각의 기와집 모양을 하고 있는 탑신은 몸돌의 한쪽 면에만 문짝 모양의 조각을 하였을 뿐 다른 장식은 하지 않았다. 지붕돌은 밑면이 거의 수평을 이루고 있으며, 낙수면은 서서히 내려오다 끝에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위로 살짝 들려 있다.

석탑을 보고 있는 듯한 기단의 구조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도의선사의 묘탑으로 볼 때 우리나라 석조부도의 첫 출발점이 되며, 세워진 시기는 9세기 중반쯤이 아닐까 한다. 전체적으로 단단하고 치밀하게 돌을 다듬은데서 오는 단정함이 느껴지며, 장식을 자제하면서 간결하게 새긴 조각들은 명쾌하다."    (문화재청)

 

 

 

 

 

 

 

 

 

 

  

(2) 진전사지 삼층석탑(陳田寺址 三層石塔)    보물 제122호

 

조선시대의 배불정책으로 진전사가 폐사되면서 스님들이 떠나면서 진전사 위 '여귀소'에 범종과 불상을 던져 수장시켰다고 한다.

여귀소가 있던 것으로 보이는 둔전저수지 옆을 지나 삼층석탑으로 향한다.

낙엽이 쌓인 돌계단을 걸어 언덕에 오른다.

폐사지에 서서 단풍이 물든 산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는 삼층석탑을 바라보니  천 년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아름답고 고고한 모습이다.

석탑의 돌빛과 아름다운 조각에서는 은은한 천 년 향을 뿜어내고 있다.

삼층석탑 너머 멀리 동해 바다 수평선이 아련히 보인다.

폐사지를 서성이며 상념에 잠겨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낸다.

 

 

 

 

 

 

 

 

 

 

 

 

 

진전사지 삼층석탑(陳田寺址 三層石塔)    보물 제122호

"높은 지대석 위에 이중기단을 설치하고, 3층 탑신을 조성한 통일신라 8세기 후반의 석탑이다. 밑 기단에는 연화좌 위에 광배를 갖춘 비천상이 각면에 2구씩 조각되었고, 윗 기단에는 팔부중상이 각 면에 2구씩 조각되어 있다. 1층 탑신에는 여래좌상이 각면에 1구씩 조각되었다. 탑신과 옥개석은 받침이 5단이고 추녀의 네 귀가 약간 치켜들어 경쾌한 아름다움이 있으며 풍경이 달렸던 자리가 남아 있다.  이 탑은 높이가 5m로 상륜부가 모두 없어졌으나 완숙하고 세련된 불상조각이 있어 통일신라 시대의 대표적 석탑 중 하나이다."

 

 

삼층석탑

  

팔부신중과 사방불

  

하층기단 비천상

 

 

 

 

 

초층탑신 사방불

 

 

 

상층기단 팔부신중

 

아수라상

 

진전사지 삼층석탑

 

 "진전사의 옛터에 서 있는 3층 석탑이다. 진전사는 통일신라시대에 도의국사가 창건한 절이라 전하는데, 터 주변에서 ‘진전(陳田)’이라 새겨진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절의 이름이 밝혀졌다. 탑은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날아갈 듯한 옷을 입은 천인상(天人像)이 있으며, 위층 기단에는 구름위에 앉아 무기를 들고 있는 웅건한 모습의 8부 신중(八部神衆)이 있다.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는데, 1층 몸돌에는 각기 다양한 모습의 불상 조각들이 있다. 지붕돌은 처마의 네 귀퉁이가 살짝 치켜올려져 있어 경쾌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3층 지붕돌 꼭대기에는 받침돌만 남아있을 뿐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졌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으면서 지붕돌 네 귀퉁이의 추켜올림이 경쾌한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석탑 가운데 

하나이다. 기단에 새겨진 아름다운 조각과 1층 몸돌의 세련된 불상 조각은 진전사의 화려했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문화재청)

돌아 나오는 길목 물갑리에 있는 동치미 막국수로 유명한 '영광정메밀국수' 집에 들러 국수를 동치미에 말아 맛을 음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