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향기 가득한 고찰 마니산 정수사를 찾아서

2010. 10. 18. 16:20나를 찾아 걷는 길/꽃향기 가득한 고찰 마니산 정수사

꽃향기 가득한 고찰 마니산 정수사를 찾아서

 2010.10.17

 

강화터미널에서 강화 군내버스로 환승한 뒤  정수사 입구에 하차하니 버스는 휑하니 바람을 내고 저만치 달려간다.

행장을 수습하고 있으려니 누가 부르는 소리 있어 뒤돌아 보니, "이쪽으로 가면 마니산 등산로 가는 길이예요?"  자가용차 문을 열고

아주머니가 묻는다.

그렇다하니 차는 또 휑하니 숲 속 아스팔트길 속으로 사라진다.

 

천 년 고찰 정수사 가는 숲속 길을 천천히 걸어 오른다.

나뭇잎은 말라가고 있다.

아름다웠던 들꽃들의 퇴락한 뒷자락의 모습들만 군데군데 눈에 뜨인다. 

'淨水寺'라 쓰여있는 표지석을 따라 우뚝우뚝 서있는 고목나무 사이 길과 낙엽이 떨어져 쌓인 길을 걸어가니 높다란 돌계단이 보인다.

이 절의 또 하나의 볼거리 상사화는 이미 지고 돌계단엔 메마른 낙엽만 구르고 있다.

 

옆으로 난 또 하나의 돌층계를 오르니 대웅전 앞마당이다.

일주문 사천왕문도 없는 간결한 절이다.

이곳에 천년의 꽃향기가 가득하다.

연꽃 모란꽃을 통판에 투각하여 만든 대웅전 꽃문에서 천 년 동안 쉬임없이 꽃향기를 뿜어내어 고찰의 경내는 그윽한 꽃향기로 가득하다.

대웅전 부처님께 삼배하고 가부좌하고 앉아 눈을 감는다.

 

이 곳은 신라 선덕여왕 8년(639)에 회정선사가 마니산의 참성단을 참배한 후 이곳 지형을 보고 불자가 가히 삼매 정수할 곳이라 하여 사찰을 세우고 정수사(精修寺)라 했는데 그후 함허선사가 절을 중수한 후 법당 서쪽의 맑은 물을 발견하고 정수사(淨水寺)로 바꾸었다 한다.

 

대웅전 주련의 뜻을 되새겨 본다

 

摩訶大法王
無短亦无長
本來非조白
隨處現靑黃

 

거룩한 부처님은
짧지도 길지도 않고
본래 희거나 검지도 아니하며
처처에 인연 따라 나투시네

 

불자 한분이 염주를 굴리며 염불 삼매에 들어 있다.

뒤돌아 보니 창호문에 공양화가 만발하고 있다.

햇살에 비친 보병에 꽃힌 연꽃 모란꽃 문양이 공향화되어 불전을 장엄하고 있다.

위를 바라보니 빗천장에 연꽃이 피어 있고 구름 속에 용이 날고 학이 나르고 물고기가 헤엄친다. 

  

툇마루로 나와 앉아 맑고 시원한 가을 바람을 온몸에 받아 본다.
정수사 '향로전' 벽에 걸렸던 '처음처럼" 이란 글귀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많은 것을 버렸다고 생각하였는데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덕지덕지 붙인 자화상을 보았을 때 심한 자괴감에 빠진다.

솟아나는 샘물처럼 간결하고 담백해 질 수는 없는 것인가

'허공에 젖는다' 는 涵虛

허공에 젖어, 허공을 머금고, 허공을 품고 사는 함허

'한 조각의 마음 한 주발의 차에 있나니'란 선시를 남긴,

차의 달인 함허선사가 법당 서편에 솟아나는 맑은 샘물로 차를 달여 마시며 수도하였던 곳이다.

 

함허선사의 흔적 이곳 저곳을 찾아보기로 한다.

 

정수사 스님에게 함허대사 부도 위치를 물어 오백나한전을 돌아 10여분 오솔길을 따라 오른쪽 옆 산등성이에 오르니,  휘어진 소나무가 서 있는 곳에 

부도가 홀로 서서 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다.

 

"함허대사는 법명이 기화(己和)로 1396년(태조 5)에 의상암(義湘菴)에 들어가 출가하였고 1397년 무학(無學)에게 사사하였다.

1435년(세종 15)에 정수사(淨水寺)에서 입적하였는데 대사가 입적한 후 그의 수도처였던 뒷산 중턱에 현 부도를 봉안하였다 한다.

부도의 부재는 화강암이며, 전체 높이는 164cm이다. 기단 위에 탑신이 놓이고 그 위에 옥개석을 얹어 정상에 상륜을 장식하고 그 기본형은 팔각 원당형을 

따르면서 사각의 단순한 변형을 가미하였다. 기단부는 상 하대로 되었으며 각 면에는 아무런 조식도 없다."

 

"고요히 비어서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신령스런 빛이 시방에 두루 비친다

  몸과 마음 다시는 생사를 타고나지 않아

  가고 오고 또 가고 와도 걸림이 없어라"라는 임종게를 남겼다.

 

산등성이를 거슬러 오른 후 오른쪽 함허동천으로 내려간다.

기화가 걸었던 길

200m 길이의 긴 너럭바위를 타고 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며, 나무뿌리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내려가니 너럭바위가 끝나는 지점 목재로 만든 

전망소에 다다른다.

'涵虛洞天' 네 글자가 너럭바위에 새겨져 있다.

 

"강화도 화도면 사기리 마니산 계곡에 있는 함허동천은 조선 전기의 승려 기화가 마니산 정수사를 중수하고 이곳에서 수도했다고 해서 그의 당호를 따서 

'함허동천'이라는 이름을 붙혔다.

계곡의 너럭바위에는 기화가 썼다는 '涵虛洞天' 네 글자가 남아 있는데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잠겨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함허동천은 산과 물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곳으로 함허대사가 이곳을 찾아 '사바세계의 때가 묻지 않아 수도자가 가히 삼매경에 

들 수 있는 곳'이라고 하였다 한다." (안내문)

 

기화가 오르내렸을 길을 다시 거슬러 오른다. 

강진 다산초당에 오를 적에 나무뿌리 길을 걸었는데, 오늘 마니산 오르는 함허동천 너럭바위 옆 나무 뿌리 길을 걷는다.

 

정수사 암릉길은 아름다운 길이다.

마치 떡시루 같이 생긴 암반을 쌓아 놓은 듯한 암릉길의 연속이다.

서해 바다의 섬들과 강화도가 시원스레 조망된다.

멀리 영종도 인천대교도 아스라이 보인다.

시야가 좋을 땐 개성 송악산도 보인다 한다.

마니산은 백두산과 한라산의 중간지점에 있고 국조 단군이 제단을 쌓고 천제를 지냈다는  참성단을 머리에 이고 있어 백두산 한라산과 같은 반열에 있는 산이다.

우리나라 제일의 생기처(生氣處)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일요일이라 사람들이 많아 긴 암릉길을 많이 지체하여 칠선교를 지나  동봉 헬기장을 지나  출입금지된 서봉 참성단 옆길을 돌아 단군로로 내려선 후, 선수리 방향 능선길을 타다 우측 화도로 하산한다.

 

옛 선사들의 흔적을 찾아 더듬으며 오르내렸던 하루

지친 발걸음을 끌며 누런 벌판 너머 서해 바다를 바라본다.

10월의 따가운 햇살이 얼굴 가득 눈부시게 부서진다. 

 

처음처럼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 날을 또 시작하리라.

 

  

**   '사찰 장식의 선과 미'(허 균 지음)의 내용 중 門戶 부분 일부를 옮겨 본다.

우리나라 사찰 법당 문은 몇 가지 종류로 분류된다. 드물게 띠살문과 격자문이 눈에 띄고, 빗살문, 솟을 빗살문, 솟을 빗꽃살문이 대종을 이룬다.

이 중에서 화려하고 섬세함을 자랑하는 것이 꽃장식 문이고, 그 가운데서도 솟을 빗꽃살문은 장식문호의 백미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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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 꽃살문 유적 중 조형미가 돋보이는 것으로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 양산 통도사 대웅전, 속초 신흥사 극락보전, 논산 쌍계사 대웅전, 강화 정수사 대웅보전,

성주 성혈사 나한전의 꽃살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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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사 법당문은 여느 사찰의 꽃살문과 달리 통판으로 투각해 만든 커다란 꽃병 모양의 단독 문양을 사용하고 있다.

꽃병에 붉은색. 군청색. 황색. 흰색의 화려한 꽃이 가득 꽂힌 모습이 부처님 전에 오른 공양화를 연상케 한다.

공양화를 꽂아 두는 병을 보병. 길상병. 여의병 등으로 부르는데, 모두 보배롭고 상서로운 기운이 담긴 병이라는 뜻이다.

근래에 단청을 다시 올리면서 지금까지 유지해 오던 고졸한 분위기를 훼손하여 아쉬운 감이 있다.

성혈사 나한전의 문도 정수사의 경우처럼 투각기법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구성 내용면에서는 정수사의 것보다 더 다채롭고 풍부하다.

전체를 모란꽃 문양으로 채운 문도 있고, 어칸 문처럼 연 밭을 배경으로 새, 개구리, 게, 물고기, 선승 등 다양한 소재를 조합해 구성한 것도 있다. 

이 밖에도 투각한 문양을 사용한 예로서 공주 동학사 대웅전, 서울 조계사 대웅전 문 등이 있다. 동학사의 경우는 사군자와 세한삼우를 투각해 놓았는데, 

멀리서 보면 마치 병풍을 펼쳐 놓은 듯하다. 조계사 대웅전 꽃살문은 새, 동물, 식물 문양을 투각하여 격자문살 위에 붙이는 방법으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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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사찰에서 부처님 전에 올리는 여섯 공양물 중 하나이다. 육법공양물은 香. 花. 燈. 茶. 果. 米를 말하는데, 이 중 꽃은 정신적인 것으로서, 향이 법신을 , 

등이 화신을 상징하는 것처럼 꽃은 보신을 상징한다. 그래서 법당 문을 장식하고 있는 꽃들은 그 하나하나가 부처님의 지혜의 상이 될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처님을 향한 뭇 중생들의 존경과 환희의 신심이 담긴 공양화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  사진

 

 

메마른 낙엽이 구르는 정수사 입구 돌계단

 

 

대웅전 전경

 

천년의 향기를 내뿜고 있는 대웅전 꽃문

 

 

연꽃문 (꽃병 중심)

 

통판에  투각 된  모란꽃문과 연꽃문

 

 

법당 내부에서 본 창호에 비친 꽃문양 꽃이 만발한 공양화되어 불전을 장엄하고 있다

 

 

툇간(退間)

 

 

정수사 대웅전  옆모습

 

 

 

화려한  공포 및  도리에 있는 귀면상

 

 

 

함허대사 부도

 

 

 

기화가 너럭바위에 썼다는  '涵虛洞天' 네 글자

 

 

 

200m 길이의 너럭바위가 이어지고 있다.

 

 

 

너럭바위 옆 나무뿌리 길

 

 

  

 

 

정수사에서 마니산 오르는 암릉길

 

 

 

  

마니산 참성단을 오르는 암릉 길

 

 

참성단이 멀리 보인다.

 

 

 

참성단